“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이라도, 아주 조그마한 부조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18일 KBS 2TV <다큐멘터리 3일> ‘초심-경찰서 기자실 72시간’에 나온 장면 가운데 하나다. 표주연 뉴시스 기자는 ‘기자의 역할’과 ‘좋은 기사’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아마 기자라면 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아주 조그마한 부조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변화를 줄 수 있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3일>을 본 시청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법하다. 과연 이 시대 기자들은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언론 신뢰도가 바닥으로까지 떨어진 지금, 이런 말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18일 KBS 2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멀리 갈 것도 없다.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성토다. KBS MBC기자들은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촛불집회 현장에 발조차 제대로 디딜 수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데 걸림돌이 되는 게 언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3일> ‘초심-경찰서 기자실 72시간’은 기자들에게 기자로서의 초심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있는지, 사회부 초년생 기자로서 가졌던 초심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를 2013년 지금 시점에서 되묻고 있는 셈이다. 
 
이날 <다큐멘터리 3일>은 시청자들에게도 기자들의 ‘민낯’을 담담히 보여주면서 시민들과 언론인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좁히려 노력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밤새 일어난 사건 사고를 조사하는 수습기자의 일상은 언론계에선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낯선 세계’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하는 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 지 그리고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 지를 화면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 기자의 일상이 TV나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그렇게 화려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MB정권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기자들에 대한 불만과 성토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사회부 일선 기자들의 일상은 대부분 발로 뛰는 현장취재의 연속이다. 비록 그것이 시민들 입장에선 ‘성에 차지 않더라도’ 일선 기자들의 삶은 취재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사실 현재 언론의 신뢰추락은 일선 기자들보다 간부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KBS MBC기자들도 촛불집회 보도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템을 누락시키거나 단신으로 내보내는 건 보도국 간부들이다. 일선 기자들이 촛불집회 취재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간부들이 기자들의 요구를 무시해 버리면 일선 기자들로서는 이를 제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어떤 뉴스를 주요기사로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간부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18일 KBS 2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3일> ‘초심-경찰서 기자실 72시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남경찰서에서 ‘특종기자’로 불리는 한겨레 정환봉 기자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국정원 사건 특종기자’라는 별명을 얻은 정환봉 기자는 “국정원 사건을 수서경찰서에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국정원이) 댓글, 게시글 쓴 거를 밝히는 기사를 몇 차례 쓴 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특종기자’로 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심을 모은 건, 정환봉 기자를 ‘국정원 특종기자’로 소개한 사람이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는 KBS기자였다는 점이다. 현재 KBS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가장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자사 보도행태를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에서 비판하자 담당 부장 등에 대해 ‘징계성 인사’를 하기도 해 논란을 빚기까지 했다. 
 
적어도 KBS의 이 같은 ‘기조’라면 KBS기자가 경쟁사 기자를 ‘국정원 특종기자’로 소개하기가 쉽지는 않을 터. 하지만 KBS기자는 한겨레 기자를 ‘국정원 특종기자’로 당당히(!) 소개했다. 
 
   
18일 KBS 2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이 장면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언론사 보도행태와는 별도로 적어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특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공정·왜곡편파 보도의 실질적 책임은 보도국 간부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KBS 보도책임자가 기자들에게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KBS 소극 보도의 정당성’을 항변(?)하는 이메일을 보내더라도 일선 기자들의 평가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제가 한 리포트는 내 아들도 볼 수 있고, 내 손주도 볼 수 있다. 거기서 내가 내 얼굴을 걸고 이름을 내서 쓴 기사인데 그러면 여기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는 KBS기자가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에게 한 말이다. 일선 기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이 없는 기사를 쓸 수 있도록 KBS는 그리고 보도국 간부들은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언론장악’ 시대 기자에게 초심은 무엇이고, 이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3일>이 기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8일 KBS 2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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