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에서 ‘안철수의 거짓말’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MBC에 대해 제재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조만간 제재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의원이 방송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민원을 받아들인 것. 민원인은 변희재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7일 열린 방송소위에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뒤가 맞지 않다. 안철수가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그는 ‘KAIST 교수’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보편화됐다. 방송사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의 발언에 대해 최소한의 객관성은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안철수 ‘교수’의 발언을 문제 삼아 방송사를 징계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 2009년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안철수 교수편.
 
 
막무가내다. 엄광석 위원은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데 (방송이) 작용했다고 하면 홍보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제재조치를 주장했다. 앵커나 기업인, 문화예술계 출신 정치인들이 방송을 ‘홍보도구’로 이용해 자의든 타의든 정치적 입지를 키웠던 사례를 모두 끄집어내야 할 판이다. 그 중 ‘거짓말’은 없었는지 하나하나 현미경을 들이대야 할 판이다. 가능하기나 할까.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거짓말’로 지목된 내용은 모두 그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 대한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힐링캠프>에서 정치에 입문한 계기나 유년기를 설명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경험은 대개 주관적으로 기억된다. 기억을 잘못 하거나 과장했을 수 있다.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하나의 행위에는 수십 가지의 동기와 조건이 작용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해 1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1997년 IMF 사태가 터졌고 나라를 다시금 세워야 한다는 마음에 정치입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그가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정치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는 건 여러 번 언급된 바 있다. 당시 ‘지원군’이 필요했던 신한국당의 사정도 있다. ‘대통령의 딸’로 보낸 유년기를 회상하면서 꺼낸 “일탈도 있었다. 경호원 몰래 집 밖으로 나가 영화도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들어온 적도 있다”는 말은 어떤가. ‘사실’일까.
 
‘이건 다르다’고 한다. 권혁부 부위원장은 “(방송에서 한 거짓말이) 교과서에 실려서 자라나는 후세들이 신화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했다. 백번 양보해서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방통심의위가 그 책임을 물어 MBC를 제재할 권한과 근거는 없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의 각종 ‘신화’들을 확산시킨 방송 프로그램을 모두 찾아 제재할 건가. 
 
변 대표는 “거짓말을 방송한 MBC와 그 내용을 그대로 실은 각 교과서 출판사와 교육부에 이를 정정하도록 요청”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상식적이지 않다. 방통심의위가 출판사와 교육부에 교과서를 정정하도록 요청할 권한은 없다. 교육부나 출판사가 미적대니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 ‘공인’된 근거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그러라고 있는 기관이 아니다.
 
방통심의위가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제재를 하겠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말’을 내보낸 방송사를 제재해달라는 요청을 달리 거부할 근거가 없다. 교과서에 소개된 이건희 회장의 ‘신화’ 중 거짓이 있다며 이를 확산시킨 방송사를 제재해야 한다는 민원도 접수해야 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성향과 지향, 호불호를 떠나 이건 ‘상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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