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에 반대하던 코레일 정창영 사장이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의 요구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토부가 수서발KTX 경쟁체제 도입 등 철도민영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토부는 23일 보도자료를 내 ‘수서발KTX 운영권을 별도 법인에게 주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복수의 자회사를 설립하자’는 취지의 민간 검토위원회(위원장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의 보고서를 배포했다. 국토부는 이 보고서와 공청회를 거친 뒤 오는 6월 경쟁체제를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간 검토위의 안에 따르면, 수서발 KTX 운영은 코레일이 출자하는 별도의 법인이 갖게 된다. 또한 장기적으로 코레일은 지주회사가, 업무는 복수의 자회사가 나눠 갖는다. 국토부는 이것이 ‘독일식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박해규 국토교통부 철도산업팀 사무관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민간 검토위의 안에 대해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모델처럼 코레일이 출자한 독립적 회사에 수서발KTX 운영을 맡기자는 취지”라면서 “현재 철도산업은 코레일이 독점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데 (코레일이 별도 법인과) 경쟁한다면 가격은 내려가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 KTX. 사진=코레일.
 
그러나 국토부가 벤치마킹하려는 독일의 철도정책은 정작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공기업(독일철도공사)이 고속철도를 모두 소유하고 있으며, 운영권은 그 자회사 'DB'(공기업)가 갖고 있다. 이 'DB'라는 공기업 독일 간선철도 수송점유율은 99%에 이른다. 독일의 일부 지역노선에 대한 민간 참여 허용 비중은 20% 수준이다.

이런 까닭에 국토부와 민간 검토위의 안이 독일식이 아닌 영국식 민영화 모델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독일은 고속철도를 공기업이 운영하지만 국토부는 수서발KTX 운영권을 민간도 공기업도 아닌 ‘민영화 전 단계’ 법인에 넘기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국토부의 제 2철도공사 설립 방안보다 민영화에 더 근접한 정책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24일 성명을 내어 “국토교통부가 말하는 독일식 모델은 독일에 없다”며 “독일은 한국철도의 10배에 이르는 3만5800km의 철도 네트워크와 그들의 자랑인 고속철도 이체(ICE)를 독일국영철도공사가 소유, 운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코레일 출자 법인이 민간기업도 공공기관도 아니어서 민영화되기 쉽다고 철도노조는 우려하고 있다.

또한 열차운영와 선로운영이 통합된 이른바 '상하통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독일과 달리 한국철도의 경우 열차따로(철도공사), 선로따로(철도시설공단) 운영되는 비효율적인 체제도 지적받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토부가 진정으로 독일모델을 한국철도의 중장기적 발전방안으로 삼고 싶다면 한국철도 비효율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철도공사 –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공공연구소 박흥수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주요 간선 노선과 고속철도 운영을 분할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면서 “한국의 철도연장(영업노선)은 3500㎞뿐인데 독일은 10배 정도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지 경쟁이 필요한 현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 검토위 안은 이미 실패한 영국식 민영화 모델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해규 국토부 사무관은 “독일은 공기업이 운영하는 독일철도는 모기업이 있고, 그 밑 자회사가 여섯 개로 분리돼 있다”면서 “큰 틀에서 그런 형태로 개혁하자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복수의 민간기업에 지선 운영권을 주는 것도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 KTX. 사진=코레일.
 
또한 민간 검토위가 민영화 찬성론자 일색으로 구성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철도노조는 별도의 자료를 내 “평소 국토부 정책을 옹호하던 인사들과 국토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관들의 인물들로 채우고, 공정성이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구색 갖추기 용으로 KTX 민영화에 반대했던 일부 인사를 포함시켜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철도노조가 민간 검토위에 참여하는 19명의 출신기관 및 기업, 언론 기고문 등을 분석한 결과 국토부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거나 국토부 의견에 가깝게 분류할 수 있는 위원은 13명에 달했다. 철도공사가 추천한 위원은 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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