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뿌리는 해외매각이었다. 부채 누적과 판매부진이 겹치며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채권단 관리 하에 자체경영으로 경영정상화에 힘을 쏟았다. 2001년 ‘렉스턴’과 이듬해 ‘무쏘스포츠’, 2003년 ‘뉴 체어맨’ 등을 연달아 출시됐고, 쌍용차는 오히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쌍용차가 2005년 중국 상하이차(SAIC)에 매각되자,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상하이차는 1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인수 대상자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신규 프로젝트’ 추진 및 생산규모 확장에 4천여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쌍용차는 2007년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2009년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상하이차는 손을 뗐고, 쌍용차는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발표했다. 비극의 신호탄이었다.

경고음은 오래 전부터 울렸다. ‘기술유출’ 의혹이었다. 2005년 6월, 출시된 지 채 한 달 도 안 된 ‘카이런’의 제작기술을 240여억 원에 상하이차로 ‘이전’하는 계약이 맺어졌다. 보통 신차 개발 비용으로 3~4천억 원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헐값’이었다. “쌍용차 기술 반출은 계약사항이 아니며, 주주와 쌍용차 구성원에 대한 배임행위”라고 맞섰던 당시 소진관 사장은 그해 말 전격 해임됐다.

상하이차는 이후 2007년에도 전산망을 통합해 쌍용차의 차량 설계도면과 각종 핵심기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쌍용차의 핵심기술 중에는 정부의 국고지원으로 개발된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도 있었다. 국정원 등에서도 이 같은 기술유출 혐의를 포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8년 공장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2009년 10월에야 상하이차를 기소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난 직후였다. 상하이차는 이미 손을 털고 떠난 뒤였다.

‘먹튀’ 우려는 매각 당시에도 제기됐다. 상하이차는 5천909억의 인수대금 중 66%(3천931억 원)를 ‘빌려서’ 조달했다. 상하이차가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대중국 수출의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매각을 밀어 붙였다. 2004년 7월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직접 중국을 찾아 중국 정부 인사들과 쌍용차 투자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인수 후 ‘먹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당시 정부는 “매각에 실패하면 다 노조 때문”이라고 매각에 반대하던 노조를 압박하기도 했다. 공기업화 등 대안을 모색하자는 논의는 묵살됐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국장은 “당시 정권 책임과 연결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현재 야당)인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옛 열린우리당)의 책임을 언급한 대목이다.

당시 채권단의 ‘방조’도 도마에 올랐다. 2006년 10월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당시 민주노동당)은 산업은행이 상하이차와 채권단이 맺은 특별협약(채권단의 동의 없이 자산이전 및 매각이 불가능 하다는 내용)을 해제해줘 “핵심 기술이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산업은행은 이후에도 대주주이자 채무자인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쌍용차의 ‘비극’은 되풀이될 조짐을 보인다. 2011년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마힌드라사(社)에 의한 ‘먹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쌍용차는 마힌드라를 통해 올해 상반기 인도에 렉스턴 CKD(조립생산: 국내에서 반제품 형태로 생산한 후 현지에서 조립) 공장(연간 30만대 생산규모)을 짓고, 하반기부터 이곳에서 생산된 렉스턴 3천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은 이를 두고 ‘쌍용차의 인도 진출’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인도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마힌드라 측은 핵심 부품도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부품의 90%가 ‘인도산’이라는 보도도 있다. 이는 사실상 CKD 방식이 아니게 된다. 또 쌍용차가 인도에 직접 공장을 세우는 게 아니라, 마힌드라 공장에서 쌍용차가 생산되는 형태인 탓에 쌍용차가 마힌드라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설계 및 생산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익숙한 풍경’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이유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는 ‘수수방관’이다. 마힌드라가 쌍용차 인수를 위해 직접 조달한 금액은 4천2백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950여억 원은 회사채를 발행한 돈으로, 모두 쌍용차가 갚아나가야 하는 돈이다. 마힌드라는 대놓고 “쌍용차 스스로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수대금 이외의 추가 투자는 없다는 것이다. 마힌드라는 70.04%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2009년 파업을 진압했던 정부는 이에 대한 감시·감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명기 교수(한남대)는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살아남게 하려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우선 채권을 빨리 회수하는 게 목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채권을 서둘러 회수하기 위한 ‘졸속 매각’이 이뤄지고, 이후 ‘먹튀’로 다시 경영이 어려워지면 “또다시 국민 세금으로 살려 놓고 다시 파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산업은행이 국가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한다는 목적에 맞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이었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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