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이제는 마치 ‘죽음’과 ‘정리해고’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듯한 이름이다. 2009년 정리해고와 77일간의 파업으로 이어졌던 쌍용자동차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달 초 스물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세상의 소음에 묻혀 충분히 가닿지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은 그런대로 분주했다. 길을 지나던 몇몇 시민들은 말없이 와서 조문을 했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주의 깊게 영어로 써 붙여진 안내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 10여 명도 조문을 하고 갔다. 행사 참석차 상경한 길에 시간을 내어 들렀다고 했다. 전경버스 서너 대가 배치됐고, 무전기를 든 경찰들은 분향소 주변을 배회했다.

‘이름만 바꿔 넣으면 되는’ 희생자 보도자료를 써 온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을 만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은 점점 느려졌다. 한숨이 그 짧은 공백을 채워갔다. 그는 “답답하다”고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조금씩 그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년간 누적된 응어리”가 그의 오늘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한 매듭이 좀 지어져야 뭔가 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죽음’으로만 쌍용차 문제가 이해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있는 듯 했다. 쌍용자동차는 마힌드라를 통해 올해 상반기 인도에서 렉스턴 CKD(조립생산: 국내에서 반제품 형태로 생산한 후 현지에서 조립) 공장을 짓고, 하반기부터 ‘현지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은 이를 두고 ‘쌍용차의 인도 진출’이라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기술유출 의혹이 제기된다. 쌍용차에게는 ‘악몽’의 재현인 셈이다. 그는 “죽음은 쌍용차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이어지자 그의 입에서 ‘운명’이나 ‘유령’, ‘후회’ 같은 단어들이 흘러 나왔다. 그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에게 쓴 소리를 뱉어냈다.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민주당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쌍용차의 해외매각을 승인했던 참여정부의 ‘원죄’를 이제와서 원망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변했다면 뭐가 변했나” 민주당이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오늘 아침에도 경찰과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다.

“늘 있는 일이다. 화환이 들어오는 걸 막으려고 했다. (추모열기가) 확대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다.”

-시민들은 많이 오는 편인가.

“공지영 작가가 책도 내고 한다고 하니까 많이들 오신다. 또 범국민추모위가 구성돼서 단체나 활동가 조직들이 많이 적극적으로 한다.”

-쌍용차 실적이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3월에 9천대 판매를 돌파했고, 3개월 연속 증가했다고 한다. 어떤 생각이 드나.

“쌍용차가 내놓는 자료니까 객관적 지표는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지표상으로 보면 무급자들이 지금 못 들어갈 이유는 전혀 없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할 게 아니라고 하면 이렇게 버틸 이유가 전혀 없다. 이건 볼모로 잡는 거다. 죽은 사람을 상대로 산 사람을 볼모로 잡고, 해고자를 볼모로 잡고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쪼아대고. 여전히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 면이 쌍용자동차가 다른 사업장에 비해서 아주 악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지점이다.”

-사측은 연간 16만대 이상이 돼야 2교대 분량이 가능해서 무급휴직자 복직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사기다. 지금까지 쌍용자동차가 16만대를 달성한 적이 한 번인가 있다. 안 받겠다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계속 말이 바뀐다. 이유일 사장이 작년에는 2013년 얘기했었는데, 이번에 베이징 모터쇼에서는 2016년을 얘기한다. 그 것(생산량)과는 무관하게 무급휴직자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건 돈을 줘야 할 문제다. 1년 동안 무급이었고, 1년 뒤에는 유급이라는 얘기였다. 공장 안에서 일을 시키든 시키지 않던 그건 생산량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 돈을 (평상시 임금의) 얼마를 주든 줘야 한다. 그 사람들은 유급직원이다. 그런 약속에 대해서 전혀 안 지키고 있다. (2012년 2월 기준, 무급휴직자는 457명이다.)  생산량이 안 늘어났으니까 당연히 못 들어온다고 사람들이 ‘합리적 사고’라고 생각하는 틀로 생각하는데, 실제는 전혀 다르다.”

-16만대 이야기하는 게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한 수치라는 건가.

“불가능하다는 건 아닌데 뜬금없이 16만대 이야기가 왜 나왔냐는 거다. 예를 들어서 회사 측이 애초 합의 때 생산량이 16만대 수준이(면 복직시키겠다)라든지 이런 게 있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지금 쌍용차가 16만대를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떤 근거도 없다.”

-‘먹튀’에 대한 우려가 2011년 마힌드라 매각 당시에도 있었다. 마힌드라가 쌍용차의 일부 차종을 인도에서 직접 생산한다고 해서 다시 ‘먹튀’ 의혹이 제기되는데, 어떻게 보나.

“아마 그게 쌍용차 문제 해결과 닿아있을 것 같다. 기술유출 논란도 있지만 마힌드라 같은 경우는 자본유출의 가능성이 보인다. 마힌드라는 사실상 손 안 대고 코푸는 격이다. (2011년 3월, 법원의 회생절차종결 결정으로 쌍용자동차는 5225억원에 마힌드라로의 매각이 확정된다. 마힌드라는 신주발행과 회사채 발행 등을 거쳐 실제 인수 대금으로 약 2570억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통제가 안 된다. 지금 주인 없는 회사처럼 가고 있는 모양새다. 기술유출 논란도 있는데, 상하이 때와는 조금 (형태가) 다른 것 같다.

노동조합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거다. 경영에 대해서 명확히 보여줄 것은 보여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공장 안에 있는 노조가 그런 역할을 못하니까 사실상 통제받지 않는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 어떤 식으로 회사가 운영되는지도 잘 모른다. 전혀 모른다.”

-사측에선 마힌드라의 기술 능력이 충분해서 기술유출 가능성은 없고, 인도에서 직접 생산하면 110%에 달하는 관세를 물지 않아도 돼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주장이다.

“그건 상하이차 때도 그렇게 (주장해)왔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넘을 건가의 문제가 핵심문제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서 경영이 호전됐으니 (복직 요구를) 받아라, 뭐가 우려되니 뭘 해라 하는 주장 가지고는 쌍용차 해법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난번 민주통합당 19대 당선자 은수미 의원(비례대표) 얘기처럼 국정감사나 이런 걸 통해서 포괄적으로 한 번 엎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애초에 상하이차에 넘어갈 때 당시도 여러 가지 논란과 반발이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이 됐던 게 뭐였나.

“상하이차 당시는 명백한 기술유출 우려였다. 그리고 그게 사실상 입증된 거다. 2007년도에 소위 ‘L-프로젝트 라이센스 계약’으로 카이런이 중국에서 생산이 된다. (당시 쌍용차는 기술유출에 반대하는 소진관 사장을 해임하고, 240여억 원에 이 같은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신차 개발에 보통 3~4천억 원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헐값’이었다.) 그 때 <시사기획 쌈>이라고 KBS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도면이 유출되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로 다 나갔다. 그게 사실상 입증됐다. 회사에서는 부인했었고, 오히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상하이차가 다시 정리해고를 들고 나왔다. 2007년도에 5백 명 정도 희망퇴직 하는 걸로 정리됐다. 그 때 노조가 지금 어용노조 위원장이다.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다. 그 때 그렇게 할 문제가 아니었다. 기술유출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라고 노조에서 치고 나갔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회사 측과 ‘쇼부’를 쳤다. 그런 과거가 있다. 그 때 그 노조위원장이 지금 어용노조 위원장 하고 있는 이유도 있는 거다.”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보나.

“DJ 정부, 참여정부 넘어오면서 해외매각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모든 걸 해외매각해야 된다는 그런 어떤 기조였기 때문에. 쌍용차 문제도 사실 그게 해외매각으로 해법이 될 수 있었느냐, 다른 여러 전문가들 의견을 따라서 다른 방식은 없었는가, 그런 것에 대한 검토가 거의 없었다. 당시에도 없었고, 지난해 마힌드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살 사람이 없다’는 논리를 댔다. 그래서 마힌드라에게 지분을 20%까지 더 얹어줘서 매각을 했다.

쌍용자동차가 하나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좀 다르지 않았겠나. 자동차산업이라는 게 전후방 산업의 연관효과가 있기 때문에 쌍용차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지만, 부품사라든지 여러 가지로 보면 결코 이건 개인기업의 회생이나 경영의 판단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는 없다는 차원에서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해외매각이 아니었다면 어떤 대안이 있었을까.

“공기업화 얘기도 있고 했는데, 여러 가지 모델들은 충분히 있었다고 본다. 쌍용자동차가 그간 부침의 역사인데, 만약 이걸 좀 더 중장기적으로 조금만 길게 봤다고 하면 이렇게 10년 넘게 계속 부침의 역사로만 끌려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 있어서 매우 안타까운 게 많다.”

-당시 상하이차 인수를 승인한 게 참여정부였는데.

“맞다. (민주당에서 쌍용차 문제에 대해) 더 세게 얘기 못하지 않나. 그 당시 당신들이 왜 그랬느냐는 얘기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제 경제정책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 건가, 혹은 그 때 그 판단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질문이 지금 시점에 맞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지금 쌍용차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그런 차원에서 민주당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뭔가를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 (경제 정책이) 변했다면 뭐가 변했나, 어떤 게 변했나. 쌍용차 같은 이런 문제가 또 터졌을 때 단순히 사람이 죽어나가는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위기에 있을 때 해외매각이냐 아니냐, 어떻게 살릴 거냐라는 차원의 경제정책에 대한 당신들의 대안은 뭐냐. 이 부분이 오히려 집중적으로 민주당이 대답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민주당이 과거와 관련해서 사안별로 유감도 표현하고 얘기를 하지만, 그런 면에서 좀 총체적인 그림, 전체적인 걸 가지고 사과가 됐든 뭘 해야 하지 않나싶다. 그리고 쌍용차가 매각되는 일련의 과정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당시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도 있고, 매각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다.”

-매각 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문제점들이 여전히 많다는 이야긴가.

“지금 상하이차 얘기를 하면 철지난 얘기같이 들리지만, 상하이차로의 매각 과정과 그 이후 기술유출 문제, 그 다음에 기술유출이 허용될 수 있게끔 만들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분명히 좀 따져야 한다고 본다. 밝혀져야 한다.

(밝혀지지 않은 문제가) 굉장히 많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자든 해고자든 아니면 지금 공장안에 다니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응어리가 있다. 수년간 누적된 응어리가 있다. 누가 봐도 다 기술유출이고 먹고 튀었는데, 먹튄데, 세상은 다 먹튀라고 하는데 우리(쌍용차의 공식입장)는 아닌 거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피해는 우리만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응어리가 있다. 저것만 밝혀져도, 저것만 됐어도 하는 게 있는 거다. 계속. 얼마나 억울한가. 답답하고. 그게 기본적으로 있다. 그래서 이 문제가 꼭 풀려야 한다고 본다. 자초지종이 어떻게 됐는지 명확히 뭐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없는 거다. 그런데다가 파업 들어가면서……. (한숨)”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의 ‘먹튀’에 대해서는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면이 있다.

“돌이켜보면 전략적으로 쌍용차가 좀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초창기에 대응할 때. 상하이 먹튀 나왔을 때, 정리해고 3천명 나올 때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 초반에 뭔가 했어야 하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로는 운명도 있는 것 같다. 믿지는 않는데.”

-파업 이후 벌써 세 번째 봄이다. 누구나 쌍용차가 ‘문제’라고 말하는데, 해결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공지영 작가도 그런 얘기를 얼핏 했는데. 실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누가 딱 안 잡히는 거 있지 않나. 예를 들어서 한진은 조남호가 잡히고 현대차는 정몽구가 잡힌다. 쌍용은 누가 잡히나. 없다. 잡히는 게 없는 거다. 유령하고 싸우는 것 같다. 이게 책임을 누구한테 물을 거냐. 상하이한테 물을 거냐, 이명박한테 물을 거냐. 기술유출 문제는 여기에 물어야 할 것 같고, 다른 문제는 저기에 물어야할 것 같고. 다 물어야 할 대상이 다른 것 같고. 뭉뚱그려서 투기자본의 문제로 엮기에는 뭔가 좀 허전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한마디로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운다는 느낌이다. 아, 이건 공지영 작가 표현이다.”

-그게 ‘주인 없는 회사’처럼 됐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같은 맥락이다. 싸우고는 있는데, 지금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쌍용차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가지가 줄기가 됐다. 이걸로만 얘기가 돼 버리니까 미쳐버리는 거다. 계속 죽음 문제, 트라우마, 치유 이런 문제로 인터뷰를 하니까 쌍용차의 본질적인 문제는 잘 모른다. 계속 그런 식으로만 인터뷰를 하니까 어느 순간 기술유출 문제는 저도 등한시하게 됐다. 애초에 ‘쌍용차=죽음’ 이 문제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이렇게 또 옮겨가버렸다. 기술유출에서, 해고에서, 죽음으로. 계속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싸움도 어려워지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안 드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문제해결이 더딘 이유 중 하나가 한편으로 노동운동의 ‘위기’와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얘기를 많이 안했는데. 그렇다. 그건 쌍용자동차 문제뿐만 아니라 지금 노동운동 자체가 지금 많이 위축되어 있다.”

-총선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렸을 것 같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든 노동운동 중심의 이런 분들이 정말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군가 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물론 선거 연대차원으로 민주당과 함께 선거운동 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그 문제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대한문에 이 천막조차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고 몇날 며칠 (경찰에) 깨지고 두드려 맞고, 그 과정에서도 넘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민주노총, 그리고 소위 서울 인근에만 해도 간부들만 해도 수천 명이 되는데. 여기에 자발적으로 올 수 있는 간부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굉장히 씁쓸했다. 이건 아닌데. 여기 와서 격렬하게 이것을 지키는 것이 왜 선거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까 하는 고민이 있다. 재능(농성장)에 가서 재능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왜 선거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까. 우리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정당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그동안 계속 노동운동 위기론으로 10년 넘게 팔아먹고 살았지 않나. 위기론 가지고 10년 버틴 거다. 위기론도 안 먹힐 것 같고. 이게 바닥인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가서는 곤란하다는 건 있다. 좀 더 주목해봐야 할 건 그런 것 같다. 프랑스 대선도 보면 그런 게 있는 것 같은데. 르팽 지지자들이 보면 하층노동자가 꽤 많다.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를 안했다고 한다. 사실 아닌 것 같다. 분석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자인 것 아닌가. 표로 보면 충분히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런 노동자들이 단순히 우리가 조직을 해야 되냐 말아야 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어찌 보면 우리 얘기에 완전히 귀를 닫는, 언제든지 극우로 갈 수 있는 그런 토양이 굉장히 넓게 번지고 있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울산 창원에서 선거전략의 문제도 있겠지만, 분명한 위험신호가 들어왔다고 본다. 몇 석을 못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두려움도 있다.”

-노동운동 진영에서 ‘언젠가는 같이 해야 되는데 아직 못하고 있는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게 안 맞을 수 있다는 뜻인가.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민주정부 10년이라고 하는 게 실력을 드러낸 것 아닌가. 계층적으로 혹은 아니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이 지금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분발해야 할 지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당장 지금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 문제 관련해서는 정말 타협의 여지없이 치고 나가서 싸워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본다.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이나 그런 면에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차이가 있는데, 밍기적거리고 큰 변화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공식 선거운동 출정식을 ‘전태일 다리’위에서 했다. 노동정책을 들여다보면 예전에 비해서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평가할 지점도 있지 않나.

“솔직히 정책 잘 못 봤다. 다만 전순옥 선생님이나 은수미 등등 (노동문제 전문가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더 봐야 할 것 같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결심을 해야 할 문제다. 그런 결심 없이는 노조법 문제라든지 현안이 많은데 휩쓸릴 것 같다. 각을 좀 더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얼마나 그럴지는 모르겠다.

아까도 천정배 의원이 다녀갔다. 떨어져서 힘 못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동영 의원도 그렇고 개별적으로 (찾아온다). 정동영 의원 같은 경우 노동현장 많이 다니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정동영 의원이 그동안 민주당의 반노동자성을 가리는 역할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알리바이처럼. 명백한 민주당의 반노동자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동영이라는 개인이 그걸 무화시켜준 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보면 정동영 의원 개인으로 보면 안타깝다. 많이 노력도 하셨는데. 근데 그것이 민주당 정책으로 당내에서 다뤄지고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지 않나. 그런 게 민주당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별의원들의 선행이나 활동은 있지만,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은 그런 자리가 아니지 않나.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 문제다. 어디 마음씨 좋은 이장님도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가 이해되면 곤란한 것 같다. 정당이라고 하는 게 정치적 목표를 같이 하는 결사첸데, 사람마다 다르고 실제로 큰 주류는 저렇게 흘러가고. 이건 아니라는 거다. 헷갈리게 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파업사태 이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아.. (한숨). 많이. 그러니까 일 안 한지가 오래됐으니까. 라인에서 일 안 한지가 오래돼서 그게 참 감각이 없다. 출근하고 이런 거에 대한 감각이 많이 없다. 그게 좀 무뎌진 것 같고. 시간이 되게 빨리 가는 것 같다. 더디 가는 것 같은데도 빨리 간다. 벌써 3년째가 된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근데 집행유예 기간은 안 가더라고. (웃음) 지금 시간의 속도면 끝나도 벌써 끝났어야 하는데.

많이 변했다. 관계가 많이 변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또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 관계들이 완전히 깨졌다. 해고자나 다른 사업장으로 관계는 넓어지는데 이전에 있었던 관계는 다 깨졌다. 예전 같으면 보통 한 달에 부조라든지 해서 돈 10만원 나가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결혼식장 가본 적이 거의 없고. 장례식장은 많이 갔다. 돌잔치 같은 것도 잘 못 가본 것 같다. (변화의) 명암이 있다면 약간 어두운 쪽으로 많이 있는 것 같다. 밝고 예쁘고 즐겁고 이런 것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일할 때 맛이 있다. 주야간 하면 힘들다. 힘들지만 그 맛이 있다. 동료들이랑 야간 끝나고 아침에 술 한 잔 하고 그런 거 있지 않나. 야간 끝나면 아침에 축구도 하고. 주야 맞교대하는 사업장들이 야간에 볼을 많이 찬다. 그런 거라든지 사소한 일상들, 이런 게 사라졌다.”

-대한문 앞에 있다보면, 사람들 구경을 많이 할 것 같다.

“여기에서 가만히 있으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아침저녁 출퇴근 하는 사람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

“출퇴근은 좀 부럽다. 우리가 방향 없이 가는 건 아닌데, 궤적을 못 그리는 것 같아서 (힘들다). 우리도 우린데, (잘 알려지지 않은) 해고자들이 많다. 이 분들은 정말 고통스러울 거다.”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이 되나.

“해고자는 다 확인이 된다. 희망퇴직자나 이런 분들은 많이 확인이 안 된다. 이 문제가 한 매듭이 좀 지어졌으면 좋겠다. 한 매듭이 좀 지어져야 뭔가 좀 될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정리 안 된 상태로 계속 가니까 이어지는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맷집도 없고 그런 것 같다.”

-‘이창근’이라는 사람이 오늘을 버티는 힘은 뭘까.

“힘? (...) 공수부대에서 단련된 체력? (웃음). (...) 그 질문을 최근에 몇 번 받아봤는데 별로 생각을 안 해봤다. 지금 걷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어떻게 지금 걷지 않고, 자전거를 밟는다고 보면 설 수가 없을 것 같다. 서서는 안 될 것 같고. 만약에 2009년 파업 당시에 집행부가 아니었다고 하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해본다. 도망갈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근데 그 당시 조합원들을 보고, 그 당시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얘기했던 바도 있고. 그런 게 많이 걸린다. 그래서 어딜 못 간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그 얘기를 했었다. 정말 다른 데로 가고 싶다. 근데 못 간다. 어떻게 가냐. 동료가 22명이나 죽고, 후배들 형 일하던 이런 사람들이 죽지 않나.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알던 얘가. (...) 갈 수 없다. 계속 가야하는 것 같다. (한숨을 쉬던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그런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가 영화 <파주>를 예를 들었다. 거기서 이선균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선균이 영화에서 철거대책위원장이었는데, 이런 일을 왜하냐고 물으니까 처음에는 멋있어서 했고, 중간에는 잘 한다고 해서 했고, 나중에는 지금 잘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다고.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어찌 보면 약한 얘길 수도 있는데. 내가 지금 이것 때문에 하고 있다는 건 잘 안 잡힌다. 다만 이제 여기서 내가 벗어나는 건, 벗어나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편하게. 어디 가서 어떻게. 그런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빨리 해결을 해야 될 것 같고. 그런 마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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