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측근들의 대형 비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사업 청탁 명목으로 수차례에 걸쳐 억대의 금품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오늘(25일) 오전 10시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인다. 최 위원장 스스로 언론에 이 돈을 대선자금으로 썼다고 시인하면서 청와대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사람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파이시티 이 전 대표로부터 10억 원을 받아 챙겼다는 진술도 나왔다. 현 정권과 어디까지 얽혀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또, 이와 별개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이 의원의 보좌관 박배수씨(구속수사)가 200억 원 대의 은행 대출을 받게 해주는 대가로 수억 원을 챙긴 혐의를 추가로 포착했다. 검찰은 보좌관 신분으로 거액 대출을 알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내곡동 대통령 사저와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도 걸려 있다. 이미 마무리된 부정부패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걸려 있는 검찰 수사만 따라가기에도 벅찰 지경이다. 경향신문은 "완전한 레임덕"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전국단위종합일간지 4월25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MB 대선자금’도 수사한다>
국민일보 <선 그은 검찰 ‘청 눈치보기’>
동아일보 <“여론조사 쓴 돈 아니다” 하루만에 말 뒤집은 최>
서울신문 <“최시중에 20억 줬다”>
세계일보 <“박영준에 주라고 10억 건넸다”>
조선일보 <“박영준, 파이시티 사업 알아봐달라 했다”>
중앙일보 <정용욱이 파이시티 투자자 모집했다>
한겨레 <이명박 퇴임직전 ‘파이시티 시설변경’ 승인>
한국일보 <검찰, 이상득도 겨눈다>

검찰수사 관전 포인트①- 최시중, 파이시티서 받은 돈 대선자금이냐 아니냐

‘MB의 멘토’로 불리며 최고 실세로 꼽혔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로부터 수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이미 인정했다. 최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자금을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 사용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검찰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자신이 받고 있는 모든 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당시 언론들은 특히 최 위원장이 대선자금을 언급한 것에 의문을 품었다. 대선자금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개인비리 차원의 사건이 청와대가 걸린 정권차원의 비리로 성격 자체가 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과 선을 그으려하자 최 위원장이 “청와대가 날 보호해 줘야지…”라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권창출을 위해 한 일인데 이제 와 모른 척 하냐’는 서운함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런데 검찰 소환을 앞두고 상황이 조금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 위원장이 5억 원 이상의 돈을 받은 것은 시인했지만 여론조사에 쓴 돈은 아니라고 하루 만에 말을 뒤집은 것이다.

동아일보 1면 보도(“여론조사 쓴 돈 아니다” 하루 만에 말 뒤집은 최)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과 관련해 “처음에 2억 원을 받았고 그 후엔 부정기적으로 5000만원 씩 여러 번 받았다”고 밝혔다. 금품수수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은 이 돈이 대선자금에 쓰였다는 자신의 전날 발언은 뒤집었다. 그는 “돈을 받은 시점 직후가 대선이 다가오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내가 독자적으로 MB 여론조사를 하고 했거든’이라고 말했지만 이 후보 캠프의 정식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는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최 위원장은 “(받은 돈은) 그 시점에 내 개인적 활동을 하면서 모두 썼다”고 덧붙였다.

최 전 위원장이 하루 만에 대선자금 발언을 번복한 것은 불쑥 진실을 털어놓았다가 파장이 청와대로 확산되자 다시 주워 담으려 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향한 계산된 시위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 전 위원장이 ‘대선자금’에서 ‘개인용도’로 썼다고 말을 뒤집으면서 검찰 조사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가려질지 주목된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을 불러 조사한 뒤 사전 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 뒤늦게 말을 바꿨지만 파이시티 전 대표가 검찰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아파트 구입 명목으로 10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하면서 현 정권이 마냥 덮고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박 전 차관은 MB 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인물이다. 돈을 받은 시점도 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으로 있던 2008년 1월로, 대가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관전 포인트②- 최 위원장이 받은 돈 5억이냐 20억이냐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소환에 앞서 언론에 수차례에 걸쳐 돈을 받은 것을 인정했다.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언론들은 그 규모를 약 5억 원 정도로 추정 보도했다.

하지만 서울신문 1면 보도(“최시중에 20억 줬다”)에 따르면 파이시티 이 전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20억여 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 뇌물 규모에 대해서도 말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향후 검찰 조사에서 계좌추적 등을 통해 철저하게 가려내야 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 2면 기사에서 파이시티서 건넸다는 돈은 61억인데 드러난 건 11억 밖에 안 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검찰이 현재 밝혀낸 로비자금 규모는 현재 1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브로커 이동율 씨를 통해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전해달라고 줬다는 돈만 61억5000만 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6분의 1 수준 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다.

경향신문은 “파이시티에 대한 법원의 기업회생 실사에서 회사자금 1291억 원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검찰의 로비 의혹 수사는 최 전 위원장이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관전포인트③- 청탁은 이뤄졌나 실패했나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 등 정권 실세에게 건넸다는 돈은 힘을 발휘했을까. 일단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이 청탁을 받은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에게 민원성 전화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들의 반대에도 터미널의 4배가 넘는 거대 상가가 들어서는 것을 허가해줬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임기 종료를 5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한겨레는 1면 <이명박 퇴임직전 ‘파이시티 시설변경’ 승인> 기사에서 “서울시가 2006년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도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 승인을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일부 위원들은 교통난과 엄청난 특혜라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지만 서울시의 뜻대로 통과됐다.

파이시티 사업은 이후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8년 8월 서울시가 이곳에 오피스텔 등 업무시설(연면적의 20%인 15만5000㎡)을 ‘터미널 부대시설’로 허용하는 안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었지만 역시 그대로 통과됐다. 이 조치로 파이시티가 얻은 개발이익은 5000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이시티 쪽은 "수십억원을 상납받던 최 전 위원장에게 돈줄을 끊자, 곧바로 사업권 자체를 강탈했다"고 주장했다(한겨레 2면 <파이시티쪽 "상납 끊자 사업권 강탈">).

한편, 서울시는 파이시티 문제가 불거지자 내부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경기 서울시 대변인은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 전반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관전포인트④- 검찰의 오락가락 행보, 대선자금은 안 건드린다?

여러 보도를 종합해보면 검찰은 금품을 수수하고 청탁 전화까지 한 것으로 확인된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사전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로비 자금의 출처와 이 자금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도 손을 대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국민일보는 25일 다른 언론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의 보도를 내놨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대해 파이시티 인허가만 대상이라며 대선자금은 수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상대 검찰총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총장의 장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육사 동기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국민일보는 1면 머리기사 <선 그은 검찰 ‘청 눈치보기’>에서 “최 전 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는 아니다’라고 미리 선을 그어 논란이 일고 있다”며 “최 전 위원장이 ‘지난 대선 때 여론조사 자금으로 썼다’고 직접 말했음에도 최 전 위원장만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서둘러 끝내려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검찰의 이런 움직임은 한상대 검찰 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며 “한 총장은 23일 오전 회의에서 ‘길게 끌 수사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한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통합당은 곧바로 ‘검찰의 꼬리 자르기 시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청와대가 몸통이고 이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사건인 만큼 검찰의 어떤 꼼수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관전포인트⑤- 최시중 불똥, 청와대로 번질까

일단 청와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최 전 위원장과 본격적인 선 긋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가급적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내부적으로는 최 전 위원장의 금품 수수를 곧바로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연결 짓는 시선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나왔다.

“대통령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다. 대선 때 썼다고는 하지만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 개인적으로 받은 돈 아니냐.”(서울신문)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수억 원을 받았다고 해도 이는 이 대통령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정권 초기 호의적이었던 언론들이 임기 말 청와대를 향해 칼을 들이대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너무 무섭다. 언론이 수사기관인가. 미리 결론을 다 내버리고”라면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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