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가 되자’(Be Minor). 장애·장애인 전문 언론 ‘비마이너’는 중증장애인의 눈으로 진보적 장애운동의 역사를 기록하자는 목적으로 2010년 초 창간했다. 비마이너는 기존 언론들이 장애인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 언론환경에서 장애인의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추적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 비마이너 사무실에서 홍권호 기자를 만났다. 홍 기자는 최근 각 정당의 총선용 장애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미디어에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전동휠체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장애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했다.

“영화 <도가니>가 나왔을 때 언론은 장애문제에 대해 주목했지만 보통 기성언론은 시설 비리가 터졌을 때나 4·20 장애차별철폐의 날 정도에만 현장을 찾습니다. 그게 아니면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거나 반대로 ‘인간승리’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만난 중증장애인들은 보통 언론의 장애 관련 보도를 싫어합니다.”

이유를 물었다. 홍권호 기자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그는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 문제는 2006년부터 장애운동가들이 문제제기한 사건임을 들며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킨 건 ‘어린 여성 장애인 성폭력 문제’였고 정치권에서 관련법을 개정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계속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여론의 흐름을 받아들여 사회복지사업법, 성폭력특례법을 개정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더 근본적이라고 홍권호 기자는 설명했다. 그는 “인화학교 선생님 중에 수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아느냐”며 “이 때문에 졸업을 해도 한글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특수교사 8천여 명. 법이 정한 1만5천 명의 절반 수준이다. 2000년대 장애운동은 특수교육법을 비롯해 여러 가지 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게 많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내세운다. 홍권호 기자는 “법적 기준은 최소인데 이것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들의 장애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홍권호 기자는 “기존 언론이 장애관련 뉴스를 내보낼 때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신청자격을 1급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고, 인정조사를 통해서 1~4급으로 또 나눈다. 여기서 4급 이하 등외판정을 받으면 서비스를 못 받는다. 그러나 지자체는 신청자격과 판정등급을 헷갈려 보도자료를 내고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받아쓴다. 그는 “진보언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홍권호 기자가 파악하고 있는 오늘날 장애인들의 현실은 어떨까. 홍 기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증장애인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자립생활을 지원해달라며 시설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홍 기자는 “자립생활을 위해 활동보조서비스, 소득보장, 주거지원이 필요하지만 소득보장도 제대로 안 되고 주거지원도 안 되고 있고, 제도화된 활동보조서비스는 미흡한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특히 그는 본인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비판했다. 이 제도는 2007년 소득기준을 적용해서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소득기준에 대해 장애운동단체는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부양자의 소득, 가계의 소득이 아니라 본인소득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

홍권호 기자는 “이명박 정부가 소득이 높은 장애인들에게 본인부담금을 크게 올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부잣집에도 중증장애인이 있을 수 있지만 장애인이 가족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게 현행 제도”라고 비판하며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면 본인소득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초생활보장제도도 마찬가지다. 홍권호 기자는 부양자 여부로 최저생계비 수급권을 판단하는 제도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이 곧장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급권자가 돼야 하지만 부양의무제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부양의무제 폐지가 부모와 자녀 간 관계가 깨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해서도 크게 비판했다. 그는 “70~80세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40~50세 장애인들이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예산 부담이 반대의 이유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은 전문가 수준이지만 홍권호 기자도 처음에는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는 비장애인이고 주변에 장애인이 없이 자랐다. 그런 그가 입사하고 나서 처음 취재한 내용은 2009년 여름 ‘마로니에 투쟁’이다. 김포의 한 시설에 살던 중증장애인 8명이 서울시에 자립 지원체계를 마련해달라며 무작정 시설을 나와 2009년 여름 두 달 넘게 농성한 사건이다. 서울시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백기를 들었고, 일정 부분 제도를 이끌어냈다.

“군복무를 할 때 자원봉사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나는 2년인데 이분들은 평생 갇혀 사는 구나’하는 생각뿐이었죠. 그때 마주쳤을 장애인이 거리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 몇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대학과 거리에서 보는 장애인들은 걸어 다닐 수 있는 경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언론은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집밖에 나오지 못하는지…”

취재가 힘들지 않을까. 홍권호 기자는 인터뷰 내내 느리고 확실하게 발음했다. 취재 습관 때문이다. 그는 “취재를 하다보면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자주 만난다”며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에 끊어버리고 짐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끝까지 묻고 답하며 취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출근시간이 10시인 것도 일반 언론사와 다른 점이다. 9시 이전은 비장애인이 출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는 8시에 출근하면서 살았지만 10시에 출근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애인의 시간과 속도에 맞춰 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전히 비장애중심적인 미디어를 걱정했다. 그의 말대로 미디어와 언론에서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 ‘불편한 사람’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꼬마버스타요>를 봤습니다. 근데 저상버스가 아닙니다. 장애인 콜택시도 찾아볼 수 없고요. 그러다 외국 어린이프로그램을 봤는데 횡단보도를 지나는 시민들 중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었어요. 한국의 언론, 미디어는 장애인을 시민으로 등장시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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