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서비스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논의될 때 흔히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는 가정이 있다. 그러한 가정은 많은 경우 별로 의심치 않고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 가정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특히 이해당사자인 사업자들의 입에서 나온 주장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때로는 규제 당국에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KT가 불시에 자행한 스마트TV에 대한 인터넷 차단 조치는 말할 것도 없이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행위였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히 언론 앞에서 불법적인 조치를 강행하겠다고 천명한 행위였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연한 불법적인 조치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통신규제 당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당사자인 KT는 이러한 불법 행위를 천명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이상한 가정과 이상한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언론은 그러한 당사자의 주장을 거의 대부분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한 가정과 주장들은 과연 얼마나 옳은 것일까.

통신 서비스 문제와 관련된 최근 논의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주장에는 “통신망 사업자들이 가면 갈수록 망 투자에 더욱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이 있다. 실제로 그런가. 꼭 그렇지는 않다. 통신사들의 설비투자(CAPEX) 액수는 2008년까지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2008년 이후에는 계속 감소했다. 통신사들은 작년에는 신규서비스 준비 때문에 설비투자비가 대폭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올해 초 밝혀진 통신사들의 설비투자비는 증가한 것도 있지만 감소한 것도 있었다.

예컨대 이번 문제의 당사자인 KT의 경우 설비투자비는 전년 대비 무선은 무려 48.1% 증가했지만, 유선은 21.3%나 감소했다. 즉, 통신사들은 무선망에 한해서만 설비투자비를 늘리고 있을 뿐 유선망은 설비투자비를 오히려 줄이고 있다. 이번에 KT가 트래픽 문제를 제기한 망은 무선망이 아니라 유선망이었다.

두 번째로 통신망 사업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통신 서비스 수익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서비스 수익은 증가하고 있으나 영업비용이 늘어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을 뿐이다. SK텔레콤의 경우 영업수익은 전년 대비 3천억 원 이상 증가했다. 다만, 영업비용이 4천억 원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약간 1천억여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KT의 경우에는 이번 결산보고서에 부동산 매각 이익금이 영업수익에 포함되어 있어 지표상으로는 이를 제외한 실제 통신서비스 영업수익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1% 증가했고, 영업비용이 9.5% 증가해 영업이익은 4.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SK텔레콤이든 KT이든 영업수익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리고 KT의 경우에는 이 같은 비용지출 문제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대폭 증가했다. 가령 지난 4/4분기 영업비용만 보면 SK텔레콤의 영업비용은 전기 대비 675억여 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는데 KT의 영업비용은 전기 대비 무려 1조6천억여 원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경비 지출은 전년동기 대비 무려 58.5%, 인건비는 14.5%, 기타영업비는 무려 85.7%가 증가해 비정상적으로 지출됐다.

결국, KT는 어떤 특정 단말기가 발생시키는 트래픽 때문에 망 관리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타령할 것이 아니라 아마도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비용이 지출되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이동통신에서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를 허용했을 경우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 통신사의 매출손실률을 추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매출손실률이 최저 0.74%, 최대 2.36%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무의미한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치나 연구 결론과는 무관하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통신규제 당국은 2010년 스마트폰 패키지요금제(소위 정액요금제라고 부르는 종량요금제)를 인가할 당시부터 벌써 통신망 사업자가 모바일 인터넷전화를 차단하는 것을 허용해 왔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 경쟁사업자의 서비스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손실 때문에 경쟁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경쟁제한 행위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3개 이동통신 사업자가 이러한 제한행위를 공동으로 할 경우에 이를 가리켜 카르텔 혹은 담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처럼 사실상의 담합으로 이루어지는 경쟁제한 행위를 통신규제 당국이 허용하는 국제적인 관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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