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디지털 방송 전환을 앞두고 안정적으로 디지털 방송이 이뤄질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아날로그 보다 화질도 좋을 뿐 아니라 난시청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던 디지털방송이 정작 전파간섭 등으로 일부 지역의 경우 아예 방송자체가 안나올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사전에 충분한 공동조사와 검증이 없으면 자칫 대규모 난시청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에 그 일부만이 공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디지털TV 채널(송중계소상) 배정을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2008년 실시)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 걸쳐 주요 송신소간 ‘동일채널 간섭’ 현상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자들이 TV를 틀어도 나오지 않는 이른바 ‘블랙아웃’(난시청·아예 TV가 안나오는 현상) 상태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동일채널 간섭이란 송신소간 같은 채널을 쓸 때 생기는 충돌현상으로 혼신이 발생해 난시청이 된다는 뜻이다.

언론노조 등의 분석결과 수도권의 경우 용문산 송신소와 안산·만월·불광·파평·광암·소흘의 송중계소 권역에 동일채널 간섭이 예상되고, 감악산과 광주·운중·이동·정릉·백련산 송중계소, 남산과 포천·양서·화도·동두천, 광교산 송신소와 광명·파주 송중계소 권역 역시 동일채널 간섭이 예상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도 강원·충청권과 수도권간 주요 송중계소의 동일채널 간섭이 발생하는 곳이 14군데에 달했다.
또한 전남권이 3곳, 경북권이 3곳, 충청권이 3곳, 경남권 10곳, 전북권 12곳이 각각 동일채널 간섭 또는 인접채널 간섭 현상이 예상됐다.

특히 경기도 일대에 디지털방송을 송출하는 감악산과 용문산 등 두 송신소에 배치된 여러 채널 가운데 동일한 채널(24번)이 간섭을 낳아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과 연천군 연청읍 일원에 혼신을 낳을 것으로 예상했다. 제한적으로 공개된 자료만으로 분석한 결과가 이 정도일 뿐 모든 자료를 두고 정밀 분석 및 조사가 이뤄지면 실제 전국적으로 ‘블랙아웃’(난시청) 지역이 어느정도 규모에 이를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아날로그 방송의 경우 전국 어디에도 안테나를 달기만 하면 96% TV 수신이 가능한 상태(ATV 96%)이지만 디지털전환시 나아지기는 커녕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결과가 예측되는 이유를 두고 지상파방송사 기술인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채널의 부족현상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재 방송사가 송중계소를 통해 아날로그 방송 송출에 쓰는 채널은 14번에서 69번까지 56개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디지털 전환용 송출 채널로 14~51번까지 38개면 충분하다고 보고, 52번부터 69번까지(700MHz대역)을 회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제는 주파수 혼신을 낳은 이유가 동일채널 또는 인접채널 간 간섭이 발생하기 때문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채널로 송출해야 하지만, 방통위가 38개로 채널 수를 한정해 난시청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방송사 쪽의 지적이다.

채수현 언론노조 정책위원(SBS 기술연협회 부회장)은 28일 “방통위가 송중계소에 배정한 채로 디지털 방송을 할 경우 전국적으로 방송이 나오지 않는 곳이 숱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채널 혼신이 발생해 재앙 수준의 사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완식 KBS 기술기획부 차장도 “올 연말 아날로그 방송이 끝난 뒤 누군가 어느날 집에서 일어나 TV를 틀었는데, 채널이 뒤바뀌어 있고, 바뀐 채널로 돌렸는데도 화면이 하얗게 나타나는 경우가 대규모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런 피해자가 유료 방송에 가입하는 방법을 택하겠지만, 해당 지역 케이블업체도 난시청지역에 있으면 이마저도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기술인연합회는 방통위 시뮬레이션 자료 일체를 공개하고, 채널 의심지역으로 지목된 곳은 방송인과 함께 공동 실측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채널 재배치 평가단도 공동으로 구성해 추가적인 채널 배치에 대해서도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혼신이 예상된다고 방송이 안나오는 것은 아니라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은영 방통위 전파방송관리과 사무관은 28일 “혼신이 있다 해도 신호가 안들어오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대체수신이 된다”며 “언론노조 등에 일부 공개한 2008년 시뮬레이션 자료는 이후 바뀐 부분도 많고, 일부 재조사한 결과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장 사무관은 “용문산-감악산 간섭현상은 안테나 방향을 수정하고 추가분석한 결과 방송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고, 충청-강원지역과 수도권 송신소 동일채널 간섭 등의 경우는 간섭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이밖에 일부 문제가 되는 지역의 경우 방송사가 요구하면 적정채널을 찾아 배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38채널로 난시청(블랙아웃) 해소 불가라는 지적에 대해 장 사무관은 “방송사가 먼저 난시청 해소를 위해 어느 수준의 출력으로 방송시설을 구축할지 먼저 제시해야 한다”며 “38개 채널 내에서도 해결이 가능하고, 간섭이 발생해도 다른 채널 여유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기술인들과의 공동 실측 요구에 대해 장 사무관은 “아직 내부적으로 검토돼있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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