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선 승리도 기약할 수 없을뿐더러, 언제 또 해체의 운명을 맞을지 모르는 시한부 정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2월 3일자 <한나라, 친박 품고 새누리 간판 거는 걸로 승부 못해>라는 사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시한부 정당’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 직전에 신한국당에서 바꿨던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15년이나 사용했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 등 3번 모두 '파란 깃발' 정당의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민주통합당은 이 기간 2번의 대선 승리와 1번의 대선 실패를 맛보았지만,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대선을 치른 것은 2002년이 유일하다.

1997년 김대중 후보는 ‘국민회의’ 소속이었고, 2007년 정동영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소속이었다. 모두 민주당이 뿌리라고는 하지만, 당명은 엄연히 달랐다. 한나라당은 15년 동안 당명을 이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물론 고비는 있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명을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고, 당시 대표가 지금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당 안팎의 우려와 비판 속에 당명 교체 구상을 접게 된다.

2012년, 드디어 한나라당은 승부수를 던졌다. 15년 사용했던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역시 당 안팎의 우려가 빗발쳤지만,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과가 신통치 않다. ‘새누리당’이라는 한나라당 발표가 나오자마자 냉소와 비판이 담긴 반응이 쏟아졌다. 집권 여당 당명이 희화화 대상이 된 셈이다. 놀림감이 된 것도 나름의 관심이니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봐야 할까.

상황이 간단치 않은 이유는 한나라당의 든든한 우군인 보수신문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부글부글 폭발 직전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내색하기도 어렵고 속만 끓이고 있는 형국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제 새롭게 태어난 정당에게 ‘시한부 정당’ 표현까지 사용하는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바꾸라고 대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다.

문화일보는 2월 3일자 <새누리당, ‘몰가치 박근혜당’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라는 사설에서 “‘새누리’는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몰가치적이다. 막연하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정도의 의미일뿐 어떤 세상,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메시지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문제 있는 당명인데도 새누리당을 바꾸라는 얘기는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현상은 결국 보수 지지층을 분열시키고, 재집권 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문화일보는 사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은 보수신문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선택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버리라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현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새누리당에 대한 반발 기류도 만만치 않다. 의원총회 소집 요구는 물론 2월 13일 전국위원회에서 한나라당의 당명 변경이 무산될 것이란 전망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앞에서 ‘반기’를 들 수 있는 한나라당 의원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보수신문의 선택은 중요한 관전포인트였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는 것을 막으려면 당장 ‘비판 여론’에 불을 붙이는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데 보수신문은 속을 끓이면서도 일단 두고 보는 모습이다.

희망적인 미래가 예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누리당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수신문의 딜레마가 있다. 새누리당이 폐기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당 안팎의 우려에도 일단 당명 변경을 강행했는데, 당명 변경은커녕 ‘구멍 뚫린 지도력’을 확인시킨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가 나타날 경우 ‘대선주자 박근혜’의 위상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보수신문이 ‘폐기’ 쪽으로 힘을 싣는 것은 결과적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수신문 입장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아닌 다른 유력 대선주자 카드가 보인다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교체를 둘러싼 한나라당 안팎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든든한 응원군이었던 보수신문마저 탐탁찮은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나라당 당명 교체의 성공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예고편일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새로운 당명의 연착륙에 주력하는 한편 야당 비판을 통해 내홍을 둘러싼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황영철 대변인은 “타당의 쇄신과 변화에 대한 노력에 대해 단 한 번도 격려를 보내지 못하는 오만함은 반드시 국민에게 의해 버림받을 것”이라며 당명 교체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반응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앞서 민주통합당 김현 수석부대변인은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교체에 대해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포장지 바꾼다고 변질된 물건이 새 물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비판 논평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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