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보면 정말 성폭행·살인 저지르나

테드번디 포르노봤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가해자 아동성애자로 정형화… 위험"

2012-07-26     조수경 기자

짧은 분홍 치마에 성욕을 느낀 '아동포르노광'이자 '상습 주취자'. 최근 통영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45)씨를 언론에서 부르는 말이다.

김씨는 지난 16일 버스를 기다리던 한아름(10)양을 집으로 데려가 성폭력하려 했으나 반항하다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성추행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한양이 짧은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껴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언론들을 이 사실을 전했다. 

또한 많은 언론들은 경찰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파일 218편 중 70편이 음란동영상, 나머지는 성인소설 140여개였다고 전했다.

김씨의 집 앞에 술병이 여러 병 있었던 것도 김씨의 특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서로 쓰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자 11면 기사 <흉악범 옆 소주병들, 이번에도…>에서 "통영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 피의자 김점덕(45)이 매일 소주를 1병씩 비우는 상습 주취자였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와 함께 "24일 김점덕 집 앞에서 발견된 소주병들"이라는 사진기사도 실었다.

언론들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술에 찌들어 포르노를 보는 변태'가 저지른 끔찍한 살인이다. 특히 언론들은 김씨의 컴퓨터 안에 보관돼 있던 70편의 포르노에 주목했다. 동아일보는 24일자 머리기사 <美 다운만 받어도 10년刑 한국은 처벌 한건도 없어>에서 "아동 음란물 탐닉으로 생긴 변태적 욕구가 범행 동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3면 기사 <김점덕·오원춘·정성현…엽기적 범죄자 옆엔 포르노가 있었다>에서 "인면수심의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 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포르노"라며 "술을 마신다고 모두 주폭이 되지는 않지만, 범죄 성향이 있는 이들에게 술이 범죄의 '촉매제'로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아동 포르노 탐닉이 성폭력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며 조선일보는 '범죄 성향이 다분한 김씨가 아동 포르노를 보고 범죄 충동을 일으켰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와 성범죄의 상관관계는 논란이 다분한 주제이다. 포르노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는 다분하지만 포르노가 성범죄로 이어지는가 여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태섭 변호사는 26일 "이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도 없고 몇몇 연구는 잘못 조사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아동 포르노 자체가 범죄이지만 이것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없다"고 반박했다.

금 변호사는 "30명의 여성을 성폭력하고 죽인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는 포르노를 많이 봐서 이렇게 됐다고 해서 센세이션이 된 적이 있었는데 거짓말로 드러났다. 테드 번디가 포르노가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잘못된 통념을 이용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드 번디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델이 된 미국의 연쇄살인마이다.

금 변호사는 또 "아동 성폭력은 어느 사회나 많이 일어나는데 우리 사회가 포르노를 많이 보기 때문이고 포르노를 근절하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아동 성폭력이 일어나면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대책을 내면 정부가 받아서 조치를 취하는데 그렇게 해서 해결된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범죄 성향이 있다'는 전제를 달아도 아동 포르노와 아동 성폭력과의 연관관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기사의 논리 전개는 60대 할머니를 성추행하려고 시도하려고 했던 김씨는 범죄 성향이 있으며, 아동 포르노를 보며 변태적 욕구를 쌓으면서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 성향'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며 대부분 추측과 추정에 불과하다. '김씨에게는 전과가 있으니 충분히 범죄 성향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씨의 사례가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일반화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번 보도의 위험성은 성폭력과 아동성폭력이 아동 성애자나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만 일으킨다는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성폭력을 비롯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피의자의 유형은 의사나 법조인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 종사자나 주위에서 평범한 인물로 평가받던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통영사건 살해범 기사는 '이상한 사람'만이 이런 행동을 저지른다는 논리적 비약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활동가는 "가해자를 정형화하려는 시도는 '옷을 야하게 입었다' '술에 취해 있었다' 등의 말로 피해자를 정형화하는 편견만큼이나 위험하다"며 "포르노를 봤기 때문에 범죄자가 됐다는 논리는 성범죄에 대해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특정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태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