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24일 최순실 태블릿PC보도 이후 JTBC의 성장은 드라마틱했다. JTBC는 지난해 11월과 12월, 그리고 올해 1월까지 1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동시간대 SBS와 MBC는 물론 KBS 메인뉴스까지 압도했다. 고대영 KBS사장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 당시 JTBC의 상승세를 두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현장에 있는 KBS기자들이 보기엔 정말 한가한 소리였다. JTBC는 그날 이후 ‘비공식 공영방송’이 됐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년간 JTBC·지상파3사 메인뉴스의 20-49 수도권 시청자수(평일 기준, 닐슨코리아)를 분석한 결과 ‘뉴스룸’은 지난해 12월 평균 979만6125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방송사 모두를 압도하는 기록적인 수치였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늘어나는 만큼 JTBC 시청자수도 함께 증가했다. TV앞을 떠났던 사람들이 JTBC앞에 모였다.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됐고, JTBC는 촛불시민과 함께한 유일한 방송사가 되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JTBC 시청자수는 조기 대선기간이던 지난 5월 다시 급증해 KBS와 비슷한 수준까지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한 기대감 속에 새 시대를 보기 위해 JTBC 앞에 모여들었던 것. 이후 KBS는 시청자수에서 JTBC를 꾸준히 앞서고 있지만 온라인에서의 시청자수는 합산하지 않은 결과라 섣불리 앞선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뉴스룸’은 모바일시청 비중이 동시간대 지상파 메인뉴스보다 2배 이상 높을 정도로 디지털 공략에도 성공했다.

시민들이 뉴스를 필요로 할 때면 KBS는 언제든 JTBC에 공영방송의 자리를 내줘야 할 처지다. 신뢰도 때문이다. 시사인이 실시한 2017년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 결과 가장 신뢰하는 방송매체로 응답자의 43.4%가 JTBC를 꼽았다. 이어 KBS 21%, MBC 7.8%순이었다. JTBC는 지난해 26.3%로 KBS(29.7%)에 이어 2위였지만 올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KBS는 JTBC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MBC 신뢰도는 바닥을 찍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방송사 신뢰도 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방송사 신뢰도 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미디어오늘과 에스티아이가 실시하는 방송사 신뢰도 조사에서도 JTBC의 ‘독주’ 흐름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고대영 KBS사장이 말했던 것처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서 JTBC는 언론매체 분야에서 영향력․신뢰도․열독률 1위를 기록했다. ‘3관왕’은 최초였다. 지난해 조사에서 신뢰도 1위에 올랐던 JTBC는 영향력과 열독률에서도 각각 KBS와 네이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국정농단 보도 이후 1년간, 언론계는 JTBC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다매체 시대, 출범 6년차의 민영방송사가 획득한 이 같은 독점적 위치는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들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운데에서 합리적인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국가를 견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도 아니고 단지 JTBC여야 한다.” 손석희저널리즘은 이윽고 JTBC라는 척박한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JTBC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적폐청산이란 시대적 화두에 맞게 국가정보원 여론조작과 신군부의 광주학살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뉴스룸’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독보적 선두’라는 지표에 가려진 JTBC의 불안요소

JTBC는 올해 독보적인 성적을 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선 오히려 고민이 쌓여간다. 시청자들의 높아진 기대감 탓이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올해와 같은 성적을 내기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불안감도 있다. 

KBS·MBC가 정상화되면 JTBC의 위기는 현실화된다. 김장겸·고대영 체제의 유통기한은 아무리 길어도 내년 여름이다. KBS와 MBC기자들은 하락한 뉴스신뢰도를 회복하고 과거의 명성을 찾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다.

▲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JTBC
▲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사진=JTBC
JTBC의 최대 경쟁상대는 동시간대 메인뉴스를 진행 중인 MBC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손석희’라는 거대한 성이 있는 한 JTBC시청자를 MBC로 유입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MBC의 보도경쟁력을 단숨에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손석희 사장의 MBC사장영입이 안팎에서 거론된다. 적폐청산이라는 MBC의 방향성을 강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사인 JTBC ‘뉴스룸’의 근간을 흔들며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근 MBC 언론인들이 손석희 사장을 여러 차례 만난 장면이 다수에게 목격되고 있다. 만남의 의도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손 사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손 사장은 최근 리포트혁신TF를 통해 보도국 내부 분위기를 다잡았다. TF의 목적은 당장의 가시적인 리포트의 질적 변화보다, 지금 상황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JTBC에는 ‘독보적 선두’라는 지표에 가려진 불안요소가 적지 않다. 보도국에 방송사 출신의 10~15년차 중간간부가 부족한 점, 주요 간부진이 중앙일보 출신이란 사실은 취재 노하우를 쌓고 뉴스룸의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공유를 반복하는 과정을 쉽지 않게 하고 있다. 인력규모와 취재노하우 면에서 JTBC의 역량이 KBS와 MBC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KBS와 MBC는 JTBC의 성공 모델을 차용할 것이고, JTBC는 더 이상 ‘논조의 차별성’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할 것이다.

문제의식이 풍부한 기자들이 보도국에 가득해야 한다. 출입처를 벗어날 수 있는 숙련된 기자들이 가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앵커멘트로 대신하던 지점들을 이젠 현장의 기자들이 채워줘야 한다. 이 때문에 JTBC에는 역설적으로 손석희 사장의 리더십과 건전한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필요해보인다. 노동조합은 공정보도를 견인하는 주요한 주체로, 기자들의 주요한 노동조건인 보도공정성 논의를 사내에서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JTBC에서 노동조합은 현재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JTBC기자들은 중앙일보로 입사해 JTBC기자로 일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신문·방송 통합노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의 DNA가 갈라지면서 점차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애초 손석희 사장이 오기 전 JTBC 경영진은 JTBC에 노동조합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JTBC 기자들을 중앙일보 기자로 채용해 중앙일보 노조에 포함시켰다.

처음엔 JTBC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JTBC기자들도 중앙일보 소속이라는 데 불만이 없었지만 현재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올해를 기점으로 중앙일보 조합원 구성에서 JTBC 조합원이 절반을 넘기며 신문-방송간 갈등이 언젠가 수면위로 올라올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JTBC가 스스로 노동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할 시점도 멀지 않았다. 향후 KBS·MBC 정상화, 손석희 사장의 거취, 무노조 보도국 등의 불안요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주체는 결국 JTBC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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