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개헌을 연구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한다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대세로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발전된 대부분 나라가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시절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현재 국회에서 여야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주장하는 곳은 없다. 자유한국당이 ‘국무총리 국회 선출제’를 제안해 사실상 내각제에 가깝다는 해석도 있지만 한국당은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外治)를 담당하고 국회가 선출한 책임총리가 내치(內治)를 맡는 ‘분권형 책임총리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현실 정치에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헌법학회 등 학계에서는 내각제 지지가 더 많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가 훨씬 낫다고 본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중에서 상당 부분을 총리나 각부 장관에게 분산하는 분권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 문 대통령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당시만 해도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천정배 의원은 현재 민주평화당에서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총리추천제’를 중재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권력구조는 내각제가 옳다는 데 문 대통령과 생각이 같다”고 말했다.

▲ 민주평화당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총리추천제’ 권력구조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민주평화당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총리추천제’ 권력구조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천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대통령제가 오랫동안 유지돼 오면서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 무책임제가 만들어졌다”며 “특정 지역에서 계속 대통령을 배출하고 측근 세력은 과도하게 모든 걸 갖게 되는 반면, 대통령을 배출 못 하는 약한 세력은 아무것도 못 가지는 승자독식 체제와 양극화를 심화한 게 현 대통령제”라고 꼬집었다.

천 의원은 “지난 정권에서 박근혜 한 사람 겨우 몰아낸 것을 봐도 내각제였으면 그런 정도면 금방 무너지고 새로 선거를 할 수 있었다”며 “한국사회는 사회적·지역적으로도 승자독식의 문제가 매우 크고 이를 가장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반이 대통령제 권력구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천 의원은 민주평화당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총리추천제’가 최선의 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총리추천제는 전적으로 대통령중심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 의원은 현시점에선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이상적인 안’보다는 ‘현실적인 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했다.

천 의원은 “우리 당 안에서도 토론해 봤는데 문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많은 국민이 현재 대통령제를 원한다”며 “그래서 우리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절대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지만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형태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면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중재안으로서 총리추천제가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가장 순수한 대통령제라고 봤다”고 밝혔다.

‘총리추천제’ 최선 아닌 차선… 가장 현실적인 중재안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2여 명(응답률 11.8%)을 대상으로 개헌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권력구조에선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49.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5년 단임제가 21.1%, 이원집정부제 12.9%, 내각제는 8.2%에 불과했다.

국무총리 선출과 관련해서 국민 과반(57%)이 야당이 요구하는 국회의 총리 추천 또는 선출제 모두 반대했다(찬성 35.8%). 반대 이유로는 권력분산으로 인한 혼란(36.1%)과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30.6%)라고 꼽은 응답자가 많았다.

▲ 민주평화당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총리추천제’ 권력구조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민주평화당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총리추천제’ 권력구조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천 의원은 평화당과 정의당에서 제안한 총리추천제는 한국당이 주장하는 총리선출제와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총리선출제는 대통령 의사와 관계없이 국회에서 총리를 뽑는 것이지만, 총리추천제는 총리 임명 시 국회 동의를 얻는 지금의 제도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설명했다. 다만 총리 추천권을 대통령에서 국회로, 거부권을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천 의원은 “지금도 국회 다수파가 총리를 거부하면 못 뽑는데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국회가 계속 부동의 하면 ‘대통령 일 못 하게 야당이 발목 잡는다’게 국민 여론”이라며 “반대로 국회가 추천했는데 대통령이 계속 거부하면 대통령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야당과 협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총리 선출 주도권이 대통령에 있다며 그걸 약간 국회 쪽으로 나눠주는 정도이고 대통령 권한이 총리한테 분산될 수 있다”며 “병렬적 분산이 아니고 대통령 지휘를 받는 책임총리제가 되는 거여서 총리가 내각을 제청하면 장관도 대통령과 총리가 협의해 임명하게 된다. 그런 걸 해보자는 거고 그게 협치”라고 덧붙였다.

“총리 선출 주도권을 국회에 약간만 넘겨도 협치할 수 있다”

과거 문 대통령이 “대통령제를 해서 성공한 나라는 미국 정도”라며 “미국도 연방제라는, 연방에 권한이 분산됐다는 토대 위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고 한 것처럼 천 의원 역시 한국형 대통령제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했다.

최소한 이번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논란처럼 대통령이 임명 후 자질 논란이 불거지면 낙마하는 등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될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극복할 절차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천 의원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통령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훨씬 힘이 세다. 미국 연방의 모든 공무원은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게 돼 있다. 인사청문회뿐 아니라 상원 인준을 받아야 임명할 수 있다. 그만큼 국회에 힘이 가 있다. 만약 미국이었으면 김기식 원장 같은 경우가 가능하겠나. 미국 대통령제도 심지어 강력한 의회 견제라든지 협치를 하게 돼 있는데 우린 그런 점에서 정말 제왕적 제도다.”

천 의원은 청와대의 인사 문제와 방송법 개정 등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여야 갈등으로 국회 개헌안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대통령과 여당 수뇌부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요구하는 것처럼 6월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오는 27일 국민투표법 개정 시한을 넘겨선 안 되는데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천 의원은 “6월 지방선거·개헌 동시투표는 오늘내일이라도 타결하면 할 수 있지만 국회가 아예 열리지 않고 있으니 무슨 개헌 의지 있는지 의문”이라며 “한국당이야 야당 입장에서 그럴 수 있음을 고려하면 한국당만 욕할 수 없고 청와대와 여당의 화법은 유체이탈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통해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 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통해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 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통해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도 지키겠다”고 한 점에 대해서도 천 의원은 “그 말을 듣고 나도 눈물이 나더라. 하지만 헌법을 개정하려면 한국당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무슨 재주로 넣겠다는 건지 설득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느냐”고 질타했다.

천 의원은 “내년 5·18이 돼서 누가 문 대통령에게 약속 지키려는 무슨 노력을 했느냐고 추궁하면 뭐라고 답할 건가. ‘나는 하려고 했는데 야당이 반대해서 못 했다’고 할 것이냐”며 “지금 정권이 11개월 됐는데 국회에서 개혁 법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통과된 게 없다. 말만 무성하지 아무것도 될 수가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5·18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대통령의 약속, 노력하고 있긴 한가”

천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개혁 과제인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개혁 가능성이 높아진 이 시점에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려면 최소한 과반수를 만들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천 의원 본인이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여러 검찰 내·외부의 반발과 낮은 국정 지지율로 검찰 개혁을 시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그는 지금껏 검찰 개혁에 대해 “국민 지지가 가장 높을 때 전광석화처럼 정권을 내놓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해야 될 듯 말 듯하다”고도 했다.

천 의원은 “지금까지의 정권에 대한 지지가 언제까지 담보될 순 없다. 국민이 몇 년 동안 아무 진척도 없는데 이명박 때려잡고 이런 것만 가지고 봐줄 거 같으냐”며 “적폐청산이든 검찰 개혁이든 하려면 국회에서 어떻게 다수파를 만들 건지 굉장한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안 보여 실제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과는 매우 부진할지도 모른다”고 고언했다.

그리고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로 바꾸는 것.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질 수 있게 비례성을 높이자는 게 천 의원이 꼽는 가장 중요하고 선결적인 정치개혁이자 오랜 신념이다. 문 대통령 역시 ‘선거구제가 제대로 개편되면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 가능하다’고 밝혔듯이 천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이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이 어떻게 대표자를 뽑아 대의정치를 하느냐는 권력구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정치구조가 만들어지면 국민 수준에 의해 정치가 발전할 거다. 형식적으론 선거법 개정이 헌법과 떨어져 있어 보이나 선거제도야말로 주권자에게 가장 실질적 의미의 헌법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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