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일 강현경 코리아타임스 문화부장이 영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매체인 가디언에 기고한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성추행 고발 이후 한국 교과서들에서 지워지는 시인 고은’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이자 저술가이며 평론가인 고은(84)이 지난 토요일자 가디언에 보도된 성명에서 그의 상습적 성추행에 관한 의혹을 부정했다.” 성명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 그 어떤 부작위적 고통에 관해 이미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몇몇 개인들이 나를 상대로 제기한 상습적 추행에 관한 주장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나는 한국에서 이 논란에 관한 진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밝혀져 (의혹이) 해소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외국인 친구들, 사실과 맥락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확인해 주어야만 한다. 나는 나의 아내와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줄 그 어떤 일도 한 적이 없다.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개인으로서 시인으로서 나의 명예가 유지된다면 집필을 계속하리라는 것뿐이다.”

강현경 부장은 위의 기사에 앞서 3월1일자 가디언에 ‘고은-그의 성추행이 폭로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나’라는 기사를 올린 바 있다. 거기에는 시인 최영미가 지난 2월 ‘괴물’이라는 시(계간 황해문집 2017년 가을호에 수록)를 통해 폭로한 ‘En(실명 고은)’의 성추행 실태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고은이 그 이후 쏟아진 온갖 폭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밝혀져 있다. 고은은 진지한 자세로 반성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은 채 한 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망년회였던 것 같다. 여러 문인들이 있는 공개된 자리여서 술 먹으며 격려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뉘우친다.”

▲ 지난해 11월21일 오후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에서 열린 ‘만인의 방’ 개관식에서 고은 시인이 참석했다. 이곳은 고은 시인의 서재를 재현한 곳이자 ‘만인보’ 관련 자료 전시 공간이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21일 오후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에서 열린 ‘만인의 방’ 개관식에서 고은 시인이 참석했다. 이곳은 고은 시인의 서재를 재현한 곳이자 ‘만인보’ 관련 자료 전시 공간이다. ⓒ 연합뉴스
이런 반응을 보고 최영미 시인이 지난 2월27일 한 신문을 통해 폭로한 ‘En의 성추행 목격담’은 차마 여기 옮길 수 없을 정도로 괴기하고 섬뜩하다. 이 글 역시 강현경의 3월1일자 가디언 기고문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고은의 ‘성추행 공식 부인’ 성명은 최영미의 폭로 이후 그가 자신의 비행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로 보인 행동과는 정반대이다. 그는 수원시가 마련해준 집을 반납하면서 “더 이상 누를 끼칠 수 없다”고 했고, 단국대 석좌교수직도 사퇴했다. 수원시와 고은재단이 고은문학관 건립 계획을 철회하고, 교육부가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단 한 마디 항의도 하지 못했다. 그가 창립을 주도한 한국작가회의(자유실천문인협의회 후신)는 지난달 22일 “최근 ‘성폭력, 미투 운동’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3월 10일 이사회를 소집하여, 미투 운동 속에서 실명 거론된 고은·이윤택 회원의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은은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직을 사퇴한 채 그 입장문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가디언에 보낸 성명대로라면 “나는 성추행을 한 적이 전혀 없는데 왜 징계안을 상정하느냐”고 작가회의에 항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고은은 2000년대 들어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인물’로 각광을 받으면서 공공기관과 언론·출판계의 대대적 지원을 받았다. 그는 거기에만 기대지 않고 수시로 해외 순방을 하면서 자신의 시가 20여개 나라에서 번역·출판되도록 하는가 하면 강연도 자주 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국 언론은 ‘고은 시인 올해도 노벨문학상 유력’ 같은 기사를 예고편으로 내보냈지만, 그는 영국 런던의 도박사들이 점친 순위에서 4위로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일 뿐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다.

성추행과 부도덕한 행태가 여지없이 드러난 이상 그에게 노벨문학상은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유독 영국의 가디언에 ‘성추행 공식 부인’ 성명을 보냈으니 아직도 노벨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해야 할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