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한국통신 노동쟁의 방송보도
현대차·한국통신 노동쟁의 방송보도
‘거짓’과 ‘참’ 알 수 없는 보도행태 여전

방송뉴스 가운데 정치뉴스와 함께 가장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분야가 노동관련 보도다. 방송사들은 노사분규가 발생할 때마다 예외없이 결과만 갖고 노조측만을 몰아붙이는 정형화된 보도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평소 노조측이 주장하는 바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가 막상 파업에 들어가면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파업으로 인한 회사측의 경제적 손실, 파업 절차의 불법성 등을 들어 여론재판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 언론들의 공통적인 성향이다. 이번주 들어 발생한 현대자동차와 한국통신의 노동쟁의도 예전의 보도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난 16일 방송사들은 밤 9시 뉴스 후반부에 이들 두 사업장의 노사분규를 처음으로 다뤘다. MBC는 ‘현대자동차 내일 조업중단’ ‘한국통신 정면충돌 위기’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각각 열네번째, 열다섯번째 아이템으로 내보낸 뒤 노동부의 사법처리 방침을 단신으로 처리했다. KBS는 ‘한국통신, 노조 불법 강력대응’ ‘한국통신 왜 대립하나’ ‘현대자동차 생산 전면중단’이란 제목으로 열여섯번째 아이템부터 세 꼭지를 기자 리포트로 방송했다.

먼저 현대자동차 관련 보도 내용을 들여다 보면 지난 12일 해고 근로자의 분신사건으로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가 작업거부 사태에서 전면 조업중단으로 이어져 승용차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이 사건이 분신공동대책위원회와 노동조합간의 노노 대립과 노사간의 첨예한 대결로 치닫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리포트의 내용 가운데 현대자동차 해고근로자가 왜 분신을 했는지, 또 무엇을 요구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조업중단 사태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대기업 생산현장의 열악한 작업 환경이나 회사측의 일방적인 해고 등 노동자들이 파업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묵과한 채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 앞장서서 노사갈등을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국통신 노사문제도 현대자동차와 똑같은 논리로 풀어가고 있다. 회사측은 노조 집행부가 정보통신부 청사점거와 순직사원 분향소를 설치해 업무를 방해하는 등 불법 폭력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노조 간부 64명을 파면 또는 중징계하겠다고 밝혔고 노조는 이에 맞서 강경투쟁을 다짐, 정면충돌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지난 16일 방송보도 내용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통신이 국내 최대의 단일노조인데다 국가 통신망을 맡고 있는 공공 서비스기관이기 때문에 ‘왜’라는데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이유 역시 노조측이 정부가 정해 놓은 임금가이드 라인철폐를 주장한다든지, 노조의 정치성향 때문이라고 회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는 노동쟁의를 취재할 때 회사측의 일방적인 홍보에 치우쳐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는 구호로만 받아 들이는 기자들의 잘못된 취재 관행과 노사문제를 대립만을 내세워 단순 사건 이상으로 보지 않는 데스크들의 그릇된 인식에서 기인한다.

사업장 마다 각기 다른 갈등이 있고 이를 대화로 풀어갈 수 없는 국내 노동계의 현실에 과감히 메스를 가하는 용기가 없는지, 아니면 선거를 앞두고 YS정부에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현안은 피해가자는 태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튿날인 17일부터 경찰력이 투입전날인 18일까지 양 방송사는 두 사업장 관련 보도를 비중있게 다루면서도 내용은 △대형 사업장 분규가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재야단체로까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극심하다는 식이었다.

이어 19일 새벽 현대자동차에 경찰이 투입돼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던 2백 79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자 일제히 ‘사태해결’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통신에도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노동문제를 힘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보도태도와 한치의 차별성도 없는 것이다.

두군데 대형사업장의 노동쟁의를 다룬 방송보도는 원천적으로 모든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막는 노동법의 모순과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업주들의 횡포 등은 제쳐둔 채, 노동자들 최후의 선택일 수 밖에 없는 파업의 부당성과 파업에 따른 경제 손실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정부에게 강경 입장을 부채질하는 악역을 자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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