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6·25
언론과 6·25




어느 국민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됐다고 한다. 다음 중 침대의 특성은 무엇인가? 보기로는 가구, 과학, 침구 따위가 제시됐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과학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고 반복적으로 방영한 상업광고의 위력이 잘 드러난 예다. 이처럼 매스미디어는 침대를 과학으로, 누드모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한다.

언론이 가장 심하게 비틀리는 경우는 반론권이 채 주어지지 않는 대상에 십자포화를 퍼부어 죽여 버릴 때다. 광주사태 때 공수부대에 의한 최초의 희생자는 공교롭게도(?) 말 못 하는 장애자였다.

이유없이 얼룩무늬 군인에게 붙잡힌 그는 무고한 자신의 입장을 서투른 몸동작으로 설명하려다 더욱 심하게 구타를 당해 절명했다.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이데올로기 공격을 받고 침몰한 역사적 거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운형 김구 조봉암 등은 암살 혹은 법살(法殺) 당하기 전에 이미 관제언론에 의해 죽어 있었다.

반론권이 없는 이데올로기 공세만큼 만들고 죽이는데 용이한 도구는 없을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간첩단과 용공조작의 유령은 집권 여당의 가장 우수한 선거운동원이었다. 아직도 의문에 싸인 KAL기 폭파사건의 여인 마유미가 노태우 후보에게 적어도 백만 표를 헌납했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문민 정부는 과거 군사정권이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던 공권력 대신에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슬기를 보여 왔다. 치열한 대권 경쟁 때나 취임 후 휘몰아친 사정정국, 금융실명제 실시와 JP 몰아내기 등 세몰이가 필요할 때마다 김영삼은 언론을 동원해 탁월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관제언론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보다는 교묘한 만들기(技) 죽이기(技) 놀아나기(技)에 능한 어릿광대 노릇을 했다는 의구심을 받기도 했다.

요즘 김영삼 대통령은 5공시절의 ‘땡전뉴스’만큼이나 자주 그리고 정확히 TV에 등장해 선거혁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6·27선거를 앞두고 구태의연하게 매카시즘 현상이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통노조가 선거볼모가 되는가 했더니 잇달아 노동계에 침투한 용공조직이 검거됐고 방송 3사에 의해 6·25특집이 대대적으로 편성되고 있다.

아직 뚜렷하진 않지만 뭔가 판을 깨는 색깔논쟁이 일어날 듯하다. 참으로 6·25전쟁이야말로 언론이 부담 없이 만들고 죽이고 놀아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였다. 공격권만 있고 반론권이 박탈된 6·25전쟁은 분단체제에 편승한 냉전수구세력들의 프리미엄이자 보수언론의 화려한 글감이었다.

6·25전쟁은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거룩한 성역에 위치해 있어 조계사와 명동성당은 이에 비하면 너무 세속적인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6·25는 명분이 희박한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지극히 온당한 발언조차도 장관의 목을 떼는 분위기가 아니던가.

6·25전쟁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의 공급처가 아니라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열어가는 뼈아픈 골육상쟁의 경험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돼야 한다.

언론은 이데올로기의 굴절작업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엉덩이에 뿔 난 생각을 버리고 해방과 분단 50주년을 맞는 올해, 통일과 공명선거에 기여하는 6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이번만은 제발 간첩과 귀순용사 없이도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으면 한다.

돈만 안 쓰는 게 선거혁명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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