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자사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 언론의 입을 막는 과정은 매우 집요하고 조직적이라는 게 대다수 경제부 기자들의 얘기다.

삼성은 자사에 불리한 사건이 기사화될 조짐을 보이면 그룹비서실 산하의 전략홍보팀, 제일기획 소속 그룹홍보팀 등 가동 가능한 라인을 총동원, 로비를 벌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당기자나 편집간부들과 지연, 학연이 있는 그룹산하 임원들을 동원, 집요한 로비를 해오고 있다는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이번에 터져나온 기아자동차 공장 산업스파이 의혹 사건관련 보도과정도 이같은 삼성식 ‘대언론 로비’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기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기사를 최초로 쓴 연합통신 박모기자가 밝히는 ‘기사삭제’ 과정은 재벌에 약한 언론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5일 밤 기사작성을 끝낸 박기자는 데스크로부터 “국장이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허탈해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박기자는 △금성김치독 냉장고 설계도면 유출 △한국중공업 설비 무단촬영 등의 사례에서 보듯 삼성의 상도덕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 이번 기아건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사작성을 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담당국장이 기사를 빼버린 처사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항변이다.

삼성측의 집요한 로비공세를 익히 알고 있던 박기자는 기사작성 직후 선배기자들에게 “삼성의 로비가 거세지기 전에 보도를 해야한다”고 까지 주장했고 상당수 동료기자들도 이같은 박기자의 주장에 동의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요구를 ‘윗선’에서 받아들임으로써 한 기자의 ‘특종’기사가 날아간 셈이 됐다.

경향신문 경제부 박모기자도 삼성의 집요한 로비를 수차례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박기자는 이번 산업스파이 사건과 관련, 삼성측에 전화를 걸어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삼성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기사삭제 요구 등을 일체 하지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일부 기자들은 삼성비판 기사를 출고한 뒤 아예 호출기를 꺼버리고 삼성측의 로비를 피해다니는 경우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김모기자도 “초판에 기사가 나간 것을 보고 삐삐를 끈채 잠적했다”며 “그러나 우려했던대로 최종판에선 기사가 빠졌다”면서 불쾌해 했다.

김기자는 “지난해 한진중공업 스파이 사건이후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남의 공장 근처엔 얼씬도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뒤라 이번 기아사건에 대한 삼성측의 로비는 어느때보다 집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기사수정이나 삭제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지어 이미 예약되어 있는 광고를 ‘빼겠다’면서 언론사에 으름장을 놓은 경우도 있다. 지난 2월말과 3월초 서울신문이 본지와 자매지 <뉴스피플>에 ‘삼성그룹 제일제당 장악음모’ ‘한남동 택지 투기의혹’ 등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자 이같은 사실을 안 삼성측은 즉시 집요한 로비를 시작했고 3월9일자로 예정된 광고를 빼겠다는 압력을 가했다.

서울신문측의 강한 문제제기로 다시 광고를 게재하는 선에서 이 문제는 일단락 됐지만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광고라는 무기를 쓸 수 있다’는 삼성측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삼성그룹의 이같은 일련의 행태는 재벌의 언론통제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고도 위험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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