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립싱커 '때려잡는' TV, 믿어도 될까?
립싱커 '때려잡는' TV, 믿어도 될까?
[金土日의 리트윗] '나가수' '무한도전' … TV가 죽였던 그 가수 그 음악, TV가 다시 살린다?

미국에서 MTV가 등장했을 때, 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은 깊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음악적 재능이 별로 없는 비디오형 가수들이 성실하고 진지하게 음악 활동을 해 온 이들을 무대에서 몰아낼까 걱정했던 것이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록밴드인 다이어스트레이츠(Dire Straits)는 그런 우려를 표한 이들 중 하나였다.

립싱커, "Money for nothing"
 
그들은 MTV를 통해 인기를 얻는 가수들을 비판하는 을 1985년에 발표하였는데, 노래를 통해 MTV 의존형 가수들을 침팬지 등으로 비유하고 비하했다. 역시 유명 음악인인 스팅(Sting)과 공동 작업한 이 노래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이 곡을 타이틀로 내세운 앨범은 지금까지 판매량이 3천만 장에 이른다.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MTV형 가수들에 대한 음악 청중들의 반발심과 경계심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MTV형 가수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은 종종 등장해 왔다. 가령 KBS는 대중가요의 수준 향상 및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명목으로 1997년부터 약 2년 간 자사 프로그램 <가요 TOP10>을 통해 립싱크와 라이브를 구별해서 방송했다. 립싱커가 나왔을 때는 화면 상단에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그림을 이미지로 삽입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연대, 민언련, 딴지일보 등이 조용필, 서태지, 이승환의 팬클럽 등과 손을 잡고 라이브 문화 활성화를 위해 조직적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딴지일보는 ‘무붕콘서트’를 여러 해에 걸쳐 개최하였다. 여기서 ‘무붕’은 ‘붕어 없다’는 뜻이고 ‘붕어’는 립싱커의 딴지식 표현인데, 즉 노래는 못하고 그저 입만 뻥끗댄다는 비아냥이었다.

   
2004 무붕 콘서트 홍보물.
 
TV를 벗어나지 못하는 음악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립싱커에 신물이 났던 대중들의 반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립싱커들에게 음악인의 자리를 빼앗겨 왔던 실제 가수들은 나가수 출연에 힘입어 기록적인 음원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무한도전>이 제작한 스페셜 음악프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까지 전파를 탔다. 음악 중심의 활동 스타일을 지닌 이들이 주로 출연하여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었는데 역시 열광적인 대중의 지지와 함께 폭발적 음원 소비로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TV가 대중들의 음악적 기호와 유행을 장악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관습이다. 특히나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은 TV 브라운관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TV에 출연하기 위한 지저분한 스캔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고 음반 기획자들은 마이크보다는 카메라에 더 어울리는 이들을 선발하여 가수로 육성했다. 성대 훈련은 안 해도 성형 수술은 매우 중요했고 음반을 내면 공연 무대 대신 TV예능 무대에 먼저 등장했다. 아니,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 따위는 아예 업무리스트에 존재하지를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직업은 가수였다.

   
@CBS노컷뉴스
 
립싱커에 대한 대중들의 반격

예컨대, 한국 가요계의 정상급 가수 이효리는 2003년에 데뷔하여 각종 시상식에서 최고 가수상을 휩쓸었지만 정작 콘서트는 데뷔 후 5년이 지난 2008년에야 처음 가졌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오랜 활약은 공연 한번 하지 않는 그녀를 최고의 인기 가수로 만들어 냈다. 반면, 연습실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음악인들은 TV에 등장하는 유사음악인들에 의해 늘 세상의 뒷전으로 밀렸고 배가 고팠다.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토록 불합리한 상황에서 ‘언론의 사명’ 같은 문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음악은 음악으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TV 출연을 위한 로비 능력에 의해 평가받고 보상받았다.

그런데 <나가수>와 <무한도전>이 립싱커가 아닌 음악인들을 섭외하고 시청률을 높이면서 매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라디오스타들이 모처럼만에 비디오스타들을 음악계의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수단은 그들을 부당하게 대접해왔던 TV라는 사실. 결국 립싱커들을 우리 가요계의 주류로 등극시켰던 기획자들이 도끼로 제 발등을 찍듯 TV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음원의 유통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동료들이 제작한 음원들이 차트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음반 표지
 
Video killed the video star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음악 시장이 오로지 TV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모도 성형으로 해결하고 노래도 성형으로 해결하는 TV의 립싱커들이 음악시장을 장악하는 현실, 그래서 콘서트 시장이 없고 그에 따라 다양한 세대와 취향의 청중도 없기 때문이다. 립싱커들은 늘 혹사당하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존재로 키워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방송인이나 배우로 전업할 수 있을 뿐 음악 문화의 성장과는 관계가 없는 존재들이다. 약탈적으로 시장을 운용하는 TV 중심의 립싱커 산업은 사실상 음악 산업의 뿌리를 고사시키는 주적(主敵)이다.

사실, TV가 음악문화를 망쳤다며 줄곧 비판을 해온 사람들도 기분이 묘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잠시나마 라디오스타들을 음악의 주인으로 재림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 때, 이 상황을 응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쏭달쏭하다. 다만 손자병법에 이르길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라’ 했으니 음악시장도 하나의 전쟁터라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 TV는 아군이다. 물론 또 다른 양상의 전쟁터가 펼쳐지면 다시 TV를 향해 금새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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