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처지가 외롭게 됐다. 이명박 정부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분산배치 움직임을 ‘뉴 과학벨트’로 부르며 변론에 나섰지만, 호응하는 언론이 없다. 나 홀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기도, 자신의 관점을 뒤집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후 대구·경북 민심이 악화된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가 ‘선물’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던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지사의 청와대 비공개 오찬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만남 이후 과학벨트를 한 곳에 몰아주는 게 아니라 대구와 광주 등으로 분산 배치하는 방안이 급부상했다. 분산 배치의 뼈대는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본원)은 한 곳에 두되 50개 연구원 분원의 절반은 본원 인근이 아닌 대구, 광주 등 다른 지역에 나눠주는 방안이다. 동아는 4월 7일자 1면에 <팽창하는 과학벨트…대전-대구-광주 ‘삼각벨트’로>라는 기사를 실었고, 3면에 <3조 5000억 국책사업…세종시 홍역 이어 ‘쪼개기’ 제2격랑>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단 동아도 정부 선택을 ‘과학벨트 쪼개기’로 규정한 셈이다. 동아는 이날 관련 사설을 싣지는 않았다. 반면, 다른 언론, 특히 보수언론은 ‘나라 망치는 발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화일보는 4월 7일자 <과학벨트 ‘쪼개기’는 백년대계 흔드는 정량적 발상>이라는 사설에서 “기초과학 전 분야에 걸쳐 50개 연구 그룹을 꾸릴 기초과학연구원, 다양한 연구실험에 활용될 중이온가속기가 과학벨트를 지탱할 양대 장치다. 당연히 한 곳에 배치돼야 애초 벨트가 겨냥한 ‘집적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4월 8일자 <지역 민심 수습용 과학벨트 쪼개기는 나라 망친다>는 사설을 통해 “과학벨트의 주요 시설은 당연히 한 곳에 있어야 세계적인 과학자를 유치해 기초과학을 연구하겠다는 당초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면서 “총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에 편승해 국책사업을 특정지역의 민심 수습용이나 지역 간 나눠먹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국가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과학벨트 쪼개기 의혹과 관련해 “우리는 이런 보도와 소문이 사실무근이기를 바란다”면서 정부 행보에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보수신문의 냉랭한 시선이 이어진 가운데 동아일보가 4월 9일자 1면에 <‘뉴 과학벨트’ 부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는 “핵심 요소가 같이 가는 만큼 분리나 쪼개기는 절대 아니다”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동아는 <통합 같은 분산배치, 분산 같은 통합배치-뉴 과학벨트·>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에서는 “(정부가) ‘솔로몬의 해법’ 찾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대전이 과학벨트의 핵심 요소가 배치된 ‘메이저 거점’이라면 대구와 광주는 일종의 ‘마이너 거점’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동아가 ‘뉴 과학벨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부 출구전략 마련에 힘을 보탰지만, 정부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여론 동의를 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을 다른 지역에 분산 배치하는 방안은 보수신문이 ‘나라 망치는 발상’으로 규정한데다 청와대의 “분산이나 통합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다”라는 해명에 대해 꼼수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호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전형적인 꼼수 정치의 일환이다. 비겁한 우회전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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