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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 그까이꺼 뭐 대충 쪼개서…”
“과학벨트? 그까이꺼 뭐 대충 쪼개서…”
[뉴스분석] 이명박 정부, 대전 대구 광주 ‘분산 배치’카드 만지작 논란

“과학벨트? 그까이꺼 뭐 대충 쪼개서 지역에 나눠주면 되는 거 아녀.”

KBS 인기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아니다. ‘과학 한국’의 뿌리를 튼튼하게 조성해야 할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를 둘러싼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고자 ‘분산배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과학벨트는 이명박 대통령 대선 공약 사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월 1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과학벨트는 그 당시(대통령 선거) 여러 가지 정치상황이 있었고, 지난번 대국민 발표문에서 얘기했지만 내가 거기에선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공약이 선거 과정에서 있었다고 밝혔다.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고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대선공약집 충청도편에는 분명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대통령이 충청권 유권자들을 겨냥해 과학벨트 조성을 약속해놓고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비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과학벨트를 둘러싼 이명박 대통령 행보는 충청권 반발은 물론 영남과 호남의 유치경쟁 가열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과학벨트가 충청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우리 지역이 유치해야 한다면서 영남과 호남의 여러 도시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과학벨트 조성 구상은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다. 한국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리고자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국책사업으로 3조 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대전과 대구 광주 등으로 분산배치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과학벨트 조성의 근본적인 목적을 떠나서 이명박 정부에게 정치적 부담이 덜한 쪽으로 선택지가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을 대전은 물론 대구와 광주로 분산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이유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TK(대구 경북) 민심을 달래고자 과학벨트를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대구 광역시장과 경북도지사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비공개 오찬을 한 게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의문은 증폭됐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충청과 영남, 호남에 과학벨트를 분산배치하면 지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과학 한국의 뿌리가 돼야 할 국책사업을 ‘정치 논리’에 따라 변질시키는 선택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충청권 쪽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충청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과학비즈니스벨트를 분산 배치하겠다는 이 정부의 생각은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 후손의 앞날을 짓밟겠다는 매우 무모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충북 청원이 지역구인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할 기초과학 사업을 동남권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대구경북의 민심이반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은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국가 미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벨트 분산배치는 무엇보다 과학계에서 반대하는 방안이라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 등 7개 단체는 2월 28일 공동 성명을 통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과학벨트 분산배치론은 원래 취지를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과학벨트 분산배치를 결정한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의 미래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우선시하다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란 경고도 적지 않다.

문화일보는 4월 7일자 <과학벨트 '쪼개기'는 백년대계 흔드는 정략적 발상>이라는 사설에서 "국내외 뛰어난 과학자들이 한 지역에 머물며 최신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만 국내 기초과학 수준이 빠른 속도로 높아질 수 있다"면서 "(과학벨트 쪼개기는)국가 미래야 어떻게 되든 말든 표만을 의식해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굴복하고 보자는 망국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박성효 최고위원은 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인품’까지 거론하면서 과학벨트 분산배치 움직임을 우려했다. 그는 “정책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의 범위를 넘어서 대통령의 인품에까지도 번져나가지 않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7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동남권신공항, 반값등록금에 이어 과학비즈니스벨트까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지 말고 여기 터지면 저기 달래고, 저기 터지면 여기 달래는 땜쟁이식 국정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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