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그렇듯이, 생명이란 대단한 괴물
사람도 그렇듯이, 생명이란 대단한 괴물
초보농사꾼의 농사일기-삼방재일월기(三訪齋日月記)4. 봄날과 씨앗

되돌아보니 우수(2월19일), 경칩(3월6일)을 지나며 부터 파종과 육모가 시작됐다.

철이 어김없다. 봄에는 부지런히 씨뿌려야 한다. 그러려면 종자를 많이 확보해 두어야 한다. 좁은 한뼘 땅이라도 무언가 심어 놓으면 한 가족이 먹고 남을 만큼 되돌려 준다. 2~3월엔 파종, 옮겨심기가 계속 이어졌다. 봄이 어디서 오나 했더니 바로 싹 터오는 씨앗에서 옴을 알겠다. 아래는 2~3월 사이 최근까지의 파종과 옮겨심기 주요 작업내용이다.
 
2/8  씨감자 농협에서 인수
2/21 고추, 가지, 상추, 청경채, 쌈채 등 육모상자에 씨뿌림
2/22  하우스에 심을 씨감자 작업
2/24 고추(꽈리, 청양, 풋고추) 육모상자에 씨뿌림
2/28 시금치, 아욱 하우스 밭에 골뿌림
3/2  하우스 밭에 감자 심음
3/4  토종고추 6종 육모상자에 씨뿌림
3/7  오이, 애호박, 맷돌호박, 파 육모상자에 씨뿌림
3/8  가지 포트 이식작업 / 가지 2차분 육모상자 씨뿌림
3/10 오이, 애호박, 고추 포트 이식작업
3/11 청경채, 고추(꽈리,청양,풋고추) 포트 이식작업
3/14 방울토마토 육모상자에 씨뿌림 / 적상추 포트 이식작업
3/15 청상추 포트 이식작업
3/16 토종고추 포트 이식작업 / 들깨(깻잎) 파종
3/17 밭에 심을 씨감자 작업
3/21 방울토마토 포트 이식작업

   
시금치
 
 
   
가지
 

   
상추
 

   
아욱
 

   
 

   
애호박
 

고추, 가지, 상추,토마토 등 새싹이 터올라오는 모습이 작지만 힘차다. 흙을 머리로 이고밀며 두 손을 모아 힘차게 내밀고 올라선 다음 두 팔을 활짝 펼친다. 마침내 되살아 태어났다는 기쁨의 함성, 활갯짓으로 보인다. 두 장의 떡잎을 하늘 향해 펼치는 것이다. 태양을 향해 만세 부르는 것 같다. 광합성을 시작한다. 매일 눈에 띄게 자란다. 사람들이 "요놈들 매일매일 다르네"라고 감탄한다. 아침에 만나보면 밤에 쑥쑥 자랐다는게 느껴진다. 며칠 사이에 빠른 놈들은 벌써 세번째 네번째 잎을 내기 시작했다.
 
봄의 길목에서 비단 곡물, 채소만이 아니라 초목, 조류, 벌레 등이 깨어나는 것도 볼라치면 이 모든 것이 눈으로 보기엔 작지만 실로 웅장한 변화다. 깊은 땅밑에서 올라오는 제례악이다. 곱게 갈아놓은 땅에도 이끼가 끼더니 풀씨들이 지표면을 뚫고 여린 싹 머리를 내밀고 있고,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앞 산에도 봄빛이 슬금슬금 스며들어오고 있다.
 
생명이란 대단한 '괴물'이다. 어떤 씨앗은 바늘귀만 한데 커나가는 성장을 보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난자와 정자는 얼마나 작은가.
 
우리는 아직 이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35억년 쯤 전에 '시작되었다'고 추산할 뿐이다. 수십억년 전에 어떤 계기로 생명이 창조되어 진화하고 합쳐지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반복해서 오늘날 지구의 생물계를 이루었다고 추산할 뿐이다.

지질학적 연대와 발굴로 나타나는 실증적 증거와 과학적 분석과 상상력이 더해져 생명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구의 생물종의 하나인 사람의 경우, 사람 조상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파렌시스 같은 원시인류도 수백만 년 전, 고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에 의해 발굴된 두발로 걸은 '루시'는 약 3백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에 육상 식물은 수억년 전까지 올라간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나이가 35억 년이라면 생명의 나이는 35억 년이라는 말이 된다. 그동안 지구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번성해 발견된 동식물만 백 수십 만 종에 달하고, 실제로 지구상에는 천 수백 만 종 ~ 수 천만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보고있다.
 
그 많은 생명체들이 자라 씨를 맺고 자손을 이어간다. 사람도 그렇다. 봄날 씨를 뿌리고 옮겨심고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조그만 씨앗에서 싹이 움터 나오는 모습을 보고 또 본다. 저 자라오르는 싹들에 35억년의 생명의 역사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범상히 보이지 않는다. '생명'이라는게 무엇인가.
 

 

   
 
 

2년차 농사꾼의 농사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정혁기 농민은 서울대 농대를 나왔지만,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로 올해 두 해째 농사를 짓게 됩니다. 그의 농사일기를 통해 농사짓기와 농촌과 농민들의 애환과 생활상을 접해봅니다. [편집자주]

정혁기 농민은 현재 친환경농업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있는 사단법인 흙살림의 삼방리농장(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설 민족민주연구소 부소장, 우리교육 이사, 월간 말과 디지털 말 대표이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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