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의해 설 연휴 전날 같은 시각, 전국의 거의 모든 TV 전파를 통해 방송될 이명박 대통령 대담 프로그램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퇴임준비 토크쇼라며 즉각 중계방송을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SBS를 비롯해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3사와 YTN 등 케이블TV는 오는 1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대통령과의 대화, 2011 대한민국은!’을 방송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청와대가 방송의 형식, 대담자(시사평론가 정관용씨, 한수진 SBS 기자), 대본 작성, 프로그램 제목까지 정해 방송사에 일방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SBS가 청와대에서 직접 방송하며 이를 받아 다른 방송사들이 동시 생중계하는 형태로 방송될 예정이다. KBS의 경우 청와대 출입기자를 통해 방송 제의가 들어와 지난 28일 오전 임원회의에서 ‘뉴스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상덕 KBS 홍보주간이 전했다.

이를 두고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31일 서울 청운동 청와대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MB는 이집트 무바라크가 왜 쫓겨났는지 고민하고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성찰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최 위원장은 “마치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처럼, 방송장악이 끝났다는 것처럼 하는 참 나쁜 정권”이라며 “이젠 (프로그램 대본을 작성하는) 구성작가들 밥그릇까지 걷어차고 있다. 언론을 짓밟았던 정권은 역사적으로 심판 받을 이 기록을 기억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직접 촬영 중계하는 SBS의 이윤민 노조위원장(언론노조 SBS본부장)은 “SBS에는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팀이 없다”고 한마디로 상황을 압축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기획 연출 캐스팅까지 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퇴임 준비 토크쇼가 아니냐”고 풍자했다. 이 본부장은 “조금만 참으시라. 내년 설 조중동 종편(이 뜨면 거기)에서 방송출연을 하시라”라며 “그럴 시간 있으면 골방에 들어가 사경을 해메는 석 선장 위해 기도해달라”고 촉구했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방송의 문제를 갖고 청와대 앞까지 오게 된 것은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며 “청와대가 모든 것을 하는 상황인데, 방송사 기자와 PD들은 무얼 하라는 거냐”고 개탄했다.

엄 본부장은 “(이 정권은) 상상 이상의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조선일보가 청와대 방송이 한심하다는 사설까지 쓰겠느냐. (제발) 경고하는데, 여기서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도 이번 공동중계에 동참한 사실을 두고 “MBC는 김재철 연임 앞두고 충성맹세까지 해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4년차를 맞아 모든 언론을 죽일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국민들의 불만과 기자들의 비판을 다 무시하고 있다”며 “3사가 처한 상황이 다른 듯 하지만 결국 다 똑같다. 연대해서 싸우겠다. (제발) 즐겁게 방송생활 좀 하자”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3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처분 당하고 있는 최악의 구제역에, 우리나라 최고 명절인 설날에 고향으로 향하는 발길을 자제해달라‘는 터무니 없는 대책이 전부인 MB 정부”라며 “기름값 오르면 주유소 탓하고, 전세값 오르면 그냥 기다리라는 것이 MB 정부”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청와대에 대해 “과연 축산 농가를 두 번 죽인 ‘도덕적 해이’ 비난에 대해 사과하며 뭔가 획기적인 대안이라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일까”라며 “그래서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출연자 2명만이 질의응답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과연 아덴만 선원구출작전이 또다시 대대적으로 일방 홍보되고, 뜬금없는 ‘개헌론’ 선동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방송사에 대해 “당장 홍보성 강제 중계방송을 거부하라”며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입이 될 때 언론의 주인인 국민은 유한한 권력보다 그 권력에 빌붙은 언론을 먼저 단죄하는 법”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30여 명이 경찰이 경계를 섰고, 경찰버스 1대가 건널목 앞까지 막아서는 등 근래들어 삼엄한 경비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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