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비상식적인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공작과 여론조작이 판치던 30~40년 전으로, 갑자기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등 모든 현실이 혹독했던 과거로 떨어진 느낌이다.

삼호주얼리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선원들이 무사히 구출된데 대한 안도와 기쁨도 잠시, 왠지 속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덴만의 여명'으로 명명된 선원구출 작전이 성공하 자 이명박 대통령은 곧바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등에서는 대통령의 담화가 적절한 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대통령이 인질구출 군사작전을 진두지휘했다는 청와대의 과잉홍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이다. 우리 청해부대의 작전이 있던 바로 그 시각, 말레이시아 해군도 자국 선박을 납치한 해적들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전원 생포했지만 총리가 직접 나서서 작전성공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는 보도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선원들의 생명과 선원 가족의 생존권이 달린 구출작전을 국내정치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군이 삼호주얼리호 피랍이 일어나기 이전 교육훈 련 때 찍은 사진을 “구출작전에 성공한 뒤인 21일 또는 22일에 특수전요원들이 최영함 선상에 모여 찍은 것”이라고 각 언론에 제공, 망신을 산 일만 해도 그렇다. 만약 한겨레신문이 이를 밝혀내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들은 거짓사진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 아닌가. 대다수 신문들은 1면 등 주요 지면에 이 사진을 게재했고, “작전 성공 뒤 모여 찍은 사진으로, 부상을 입고 후송된 장병과 인질을 감시 중인 장병은 빠져 있다”는 친절한 사진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선진국이자 민주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70~80년대나 가능했던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인질 구출작전 성공에 도취한 군과 정부가 홍보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군사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돼 여당 의원들까지 이를 문제 삼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엠바고 파기에 대해 일부 언론의 제재가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부당하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논리라면 오히려 군사기밀을 유출한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문제는 이 사건과 관련해 책임 있는 사람의 사과나 문책조차 없다는 것과 대다수 언론이 정부의 홍보수단으로 춤추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권력의 기만행위에 사회가 문제의식을 간과했을 때,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한나라당 일각에서조차 반대했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를 지난 27일 임명했다.

 

   
▲ 지난 2009년 9월 MBC에서 방송된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 ⓒMBC
 

선원구출 작전-대통령 대국민 담화-구출작전의 대대적 홍보-지경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잘 짜여진 각본처럼 보인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교범으로 ‘까도남’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최중경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고 선원 구출작전 등에 묻혀 이에 대한 비판여론도 잠잠해지니 정부는 국정운영에 힘을 얻었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생포된 5명의 해적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왕실 전용기로 30일 국내로 압송된다. 아랍에미리트는 국회 날치기 통과로 우리나라 특수부대인 아크부대가 파병된 나라다. 정부의 바람대로 설 귀성길은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지는 흉악한 해적들 이야기가 다른 모든 문제들을 덮어버릴 수 있다.

또한 설을 이틀 앞 둔 새달 1일 청와대는 ‘대통령과의 대화, 2011 대한민국은’이라는 신년 방송 좌담회를 갖는다. 청와대가 대담자 선정과 방송 대본 작성까지 직접 주도해 말썽이 되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을 방송3사를 통해 내보내므로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가운데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7일(현지시각) “유례없는 최악의 구제역이 한국에서 발생했으며 그 확산정도는 지난 50년간 목격하지 못한 수준”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전국의 축산농가를 초토화시키고 축산업의 기반마저 붕괴시킬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우왕좌왕하면서 고작 내놓은 대책이란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인 설날에 고향으로 향하는 발길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물가는 뛰고 전세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다 폭설과 이상한파까지 겹쳐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이 때문인지 생계형 범죄와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요즘 부쩍 늘었다. 바닥 민심은 싸늘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고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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