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우의 수’가 운명의 장난인 이유
월드컵 ‘경우의 수’가 운명의 장난인 이유
한국 2차전 결과, 2006 환호와 2010 절망…16강 가능성은 거꾸로

언론이 다시 '경우의 수'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때마다 지긋지긋할 만큼 '경우의 수'에 울고 웃었다. 경우의 수는 확률을 다루는 수학의 영역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축구에서 경우의 수는 수학도 과학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의 일이다.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 토고와 함께 월드컵 G조에 포함됐다. 2006년 6월13일 오후 10시(한국시간) 열렸던 첫 경기에서 한국은 토고에 첫 번째 골을 내줬지만, 이천수와 안정환의 연속골로 기분 좋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두 번째 경기는 6월19일 새벽 4시(한국시간) 열렸고, 당시 우승 전력이라던 프랑스를 맞아 박지성이 천금 같은 골을 터뜨리며 1대1 무승부를 만들었다. 한국은 1승1무, 승점 4점을 이미 확보했다.

   
  ▲ 중앙일보 2006년 6월20일자 1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함께 B조에 포함됐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잡아 2대0 승리를 거뒀지만, 17일 밤 8시30분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1대4 참패를 당했다.

근래 월드컵 경기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참패였다. 실제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4골을 실점한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호주 한 나라뿐이다. 그렇다면 2차전까지 마친 상황에서 독일월드컵과 남아공 월드컵 중 어느 쪽이 한국의 16강행 가능성이 높을까.

우승권 전력 프랑스를 맞아 무승부까지 펼치는 선전을 보인 2006 독일 월드컵이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확률적으로 봐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나 '경우의 수'는 수학도 과학도 아니다.

1승1무를 거둬 승점 4점을 이미 확보했던 독일 월드컵 당시의 1∼2차전 결과보다 아르헨티나에 기록적인 참패를 당한 남아공 월드컵의 1∼2차전 결과가 한국 입장에서는 16강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이다.

기막힌 상황 같지만 현실은 그렇다. 한국은 당시 프랑스와 비겼을 때만 해도 축제 분위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축구 전문가들은 6월19일 스위스와 토고의 경기에 주목했다. 결과는 스위스의 2대0 승리로 끝이 났다. 승점은 한국과 스위스가 4점으로 똑같았지만, 골득실에서 앞선 스위스가 조1위, 한국은 조2위가 됐다. 그래도 한국은 이미 16강 진출 가능성이 큰 승점 4점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 경향신문 2006년 6월14일자 1면.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이 속한 조에 확실하게 3패를 당할 팀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당시 토고가 그랬다. 아데바요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었지만, 팀 조직력은 모래알과 다름 없었다.

 

한국이 2대1 역전승을 거뒀지만, 다른 팀 역시 토고는 만만한 상대였다. 프랑스는 2차전까지 승점 2점으로 조3위를 달렸지만, 마지막 경기가 토고였다. 프랑스는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면(실제로도 승리할 가능성이 컸다) 한국-스위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16강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조별리그 1위와 2위를 달리던 스위스, 한국의 마음이 더 급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마음이 급했던 쪽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스위스와 비겨도 100% 16강 탈락이었다.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물론 이긴다면 조1위로 16강에 오르는 상황이었다. 비기거나 지면 무조건 16강에 탈락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이었던 6월24일 새벽 수많은 국민이 숨을 죽이며 마지막 스위스전을 지켜봤다. 기습적인 헤딩골을 허용하며 0대 1로 끌려가던 한국은 꾸준히 스위스 골문을 노리며 공격을 펼쳤지만 후반 32분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운명의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 중앙일보 2006년 6월26일자 5면.  
 
오프사이드 논쟁이 뜨거웠던 바로 그 골이었다. 한국 축구팬들은 심판의 오심 때문에 16강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 두 번째 골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분명한 사실은 두 번째 골과 무관하게 한국은 16강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는 점이다.

두 번째 골이 나왔던 후반 32분까지 한국은 0대1로 끌려가고 있었는데 종료 휘슬이 울릴 남은 13분에서 16분이라는  시간에 두 골 이상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이 한 골을 만회해 1대1로 비긴다고 해도 16강은 탈락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추가골까지 허용하자 선수들도 한국 팬들도 모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3골을 넣지 않으면 어차피 16강은 탈락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0대2 패배로 끝이 났다.

2006년 여름 한반도를 휘감던 그 뜨거웠던 열기도 가라앉았고, 태극전사들은 6월25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축구 팬들은 그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지만, 선수들은 너무도 아쉬운 결과 앞에서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4년이 흘렀다. 한국은 프랑스와 1대1로 비겼던 그 때 상황과 달리 아르헨티나에 1대4 대패를 당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정반대의 상황을 맞고 있다. 당시 무승부를 해도 무조건 16강 탈락이었던 상황과 달리 이번에는 무승부만 거둬도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 조선일보 6월18일자 1면.  
 
한국이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거두면 그리스는 아르헨티나를 꺾어야만 16강에 오를 수 있다. 그리스가 무승부를 거둔다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두 골 이상을 넣어야만 16강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는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한국은 1대4 완패라는 참담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4년 전 프랑스와 1대1로 비겼을 때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공은 둥글다. 축구는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그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한국은 좌절하거나 절망할 때가 아니다.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자기 실력을 보여준다는 자세로 2010년 6월23일(수) 새벽 3시30분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 임한다면 수요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에게 16강 확정이라는 선물을 안겨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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