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 한창이다. 어딜 가나 둔탁한 기계음이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몇 년 후를 서둘러 파내려가는 것을 보면 마치 정말일 것처럼,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 시대의 노하우가 갖고 있는 놀라운 힘이다. 깔끔하게 그려진 뉴타운의 조감도를 바라보며 나 또한 언젠가 그곳에 들어설 커피숍에 앉아 하루를 노닥거릴 날이 올 것이다.

나는 현재 북아현3동에 살고 있다. 이곳도 재개발의 막차를 탄 구역으로 나는 또 이삿짐을 꾸리게 됐다. 몇 년 전 이곳에 와 느꼈던 낯설음을 조만간 미지의 다른 동네에서 다시 겪어야한다. 나는 그 동안 서울에 살면서 그 어디에도 연고가 없을 뿐더러 내 보금자리에 대한 애착도 없다. 한마디로 개발에 대한 모든 혐의가 벗어나있는 도시의 유랑민이다. 용산참사로 나라가 떠들썩할 때도 내 양심을 거기까지 걸어 두진 않았다. 비겁한 마음이 아니라, 고백컨대 무관심이다. 내 집에 대한 무관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치자. 그래,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덤덤한 내 감정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두엄 내 나는 그곳이 정말 싫었다. 한강을 떠다니는 유람선과 금빛으로 둘러진 63빌딩을 노래로 듣고 화면으로 보면서 서울에서의 삶이란 게 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를 동심이라고 본다면 요즘 나는 꿈꾸듯 청계천을 건너가며 또 다른 동심을 본다. 모처럼 학원을 벗어나 물장구를 치며 뛰노는 저 아이들. 그때의 내 웃음소리를 지금의 아이들도 닮았다. 하지만 저런 긍정적인 사실을 정말 희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왠지 슬퍼진다. 매일 걷는 검은 아스팔트처럼 어쩌다 가끔 나의 행보를 되돌아보면 나는 분명 어딘가 죽어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최대의 치적으로 자평하던 청계천 복원사업. 꽤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청계광장은 경찰의 원천봉쇄가 잦아지면서 점점 시민들의 맘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서울에 7년을 살면서 많은 희망들을 실감한다. 희망 찬 2010년. 어느덧 나는 서울의 2010년하고도 절반을 걷고 있다. 헐값에 허물어지는 빈민촌이 하루아침에 몇 십억 아파트로 둔갑되는 무서운 도시지만, 희망은 이 무서움마저 잠식하고 점점 솟아나는 도시에 맞춰 눈높이를 높여간다. 우리도 예외일 순 없다. 오를 사다리의 길이가 다를 뿐, 아직도 도시 어딘가에서 중심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본의 딜레마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서있는 이 도시적 욕망이, 청계천을 퍼 올리는 인공심장의 물줄기가 광화문광장을 넘어 이제 나라의 강줄기에까지 다다랐다는 것이다.

며칠 전 신륵사에 들러 행복한 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불철주야 공사를 진행 중인 남한강 개발현장을 다녀왔다.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몇 몇 단체와 연대하여 4대강반대시위를 하고 탁하게 뜯어진 남한강을 바라보며 현재 우리나라의 성형강박이 어디까지 오게 됐는지 현장에 와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시위현장에 모터보트를 타고 와서 우리는 꼭 성공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줄행랑을 치는 공사장 측의 조롱을 듣다보면 그들의 수직적인 사고와 우리의 수평적인 사고가 서로 위를 찌르고 옆을 찌를 뿐, 이미 소통이 두절돼있음을 진지하게 느낀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건설로써 자연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그들의 논리. 하지만 청계천을 떠올려보면 먼 훗날 그곳도 가치 없이 허물어지는 낡은 아파트처럼, 건설의 성과가 낳은 추한 애물단지가 될 것임을 짐작해본다. 자본으로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게 세련된 국토가 정답이라면 나는 두 손 들어 찬성하고 싶다. 하지만 TV광고든 뭐든 매체가 주는 깔끔한 상상력을 우린 실현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알면서도 속는다. 마치 4대강사업이 내거는 희망적인 글귀처럼.

판도라상자의 조그만 막내였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이 시대에 와서는 얼마나 거대해졌으며 막연해져있나. 인공낙원을 꿈꾸는 그들이 이제는 시멘트로 도배를 한 청계천도 부족한지 강의 뿌리에 철심을 박고 있다. 각박한 도시에서 유랑생활을 하는 내가 그나마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작은 샛강과 늪지대, 그리고 모래사장들이 드문드문 사라져간다.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망마저 뜯어내고 성형시키려는 현 정부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절망적이게도 그들의 슬로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이렇다할 힘이 없다. 다가올 2012년, 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미래가 과연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을까. 나의 희망은 진심으로 나의 판단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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