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통신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과연 ‘전자민주주의’라는 말로 대표되는 새로운 ‘열린 공간’과 ‘시민적 참여’의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파편화된 개체’라는 사회의 분열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펼쳐질 것인가.

서울대의 초청으로 방한중인 세계적인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난 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가진 세미나에서 이같은 주제와 관련, 자신의 견해를 밝혀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한국사회학회가 주최한 ‘정보화사회와 시민사회’ 세미나에 참석한 하버마스는 자신의 공공영역론을 재해석한 박형준 교수(동아대·사회학)의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뉴미디어가 복잡 다기한 현대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무정부적 상태를 부추킬 수 있다”고 비관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그러나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보화사회의 긍정적 요소및 기능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며 그의 비관적 해석이 꼭 ‘비관적 전망’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통합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인터네트, 사이버 스페이스등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뉴미디어 공간에서도 가정이나 소집단과 같은 유대공간이 존재해 정보공간내에서의 상호작용에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통합에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형준(사회학과)교수는 ‘한국사회의 정보화와 전자공간의 커뮤니케이션:공공영역론의 재해석’이라는 논문에서 “정보화사회는 하버마스가 강조해온 의사소통행위의 장으로서 공공영역에 더 적합한 매개일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하버마스의 이론들을 통해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정보화의 징조들을 해석했다.

박 교수는 “정보화가 시간, 공간을 압축시켜 상호작용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나 기업등은 법적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지만 지식정보들은 경계의 폐쇄성을 이완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이뤄지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은 공공영역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뉴미디어 영역이 복합사회적 요소를 더욱 급진전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기 보다 무정부적 상태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는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근대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정보화사회에서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 기능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에서 하버마스는 “국가의 관료적 힘과 화폐의 기능적 효용성이 공론장을 압도하고 있으며 언론에도 체제 권력이 침투해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가영역과 경제영역이 너무 압도적 힘을 발휘해 사회적 균형을 위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의한 연대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정이나 소집단이 그가 생각하는 의사소통의 중요한 장들의 예다.

그는 사회가 점점 다원화하고 복합적으로 변해가면서 사회적 통합의 어려움이 증가되고 있다고 토로하면서도 결국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이 아닌 사회여론 및 담론들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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