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한파는 대규모 고정비용이 소요되는 방송사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지상파 방송3사는 올해 매출하락 폭이 전년 대비 최소 4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최근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이들은 불요불급한 경비축소를 통해 200억 원 이상의 비용절감 방안을 마련하거나 지출 대비 수익이 마이너스인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재방송을 내보내는 자구책까지 도입하고 있다.

경영악화 얼마나…방송3사 줄줄이 적자 전망

   
  ▲ MBC 엄기영 사장은 지난달 29일 ‘사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광고 매출 상황이 IMF 외환위기 때보다 2배 이상 심각하다”며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했다. ⓒ 미디어오늘  
 
지난해 297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KBS는 올해 예상적자액이 930억 원대로 전망되고 있다. KBS는 지난 9월말 현재 올해 예상적자액을 891억원 정도로 보고 지난달부터 경비축소를 독려해 12월 말까지 204억 원의 비용절감 방안을 마련해냈다. 그러나 10월 말 기준으로 9∼10월 두 달 간 급격한 경기 악화에 따른 광고상황 위축으로 광고목표액에 무려 250억 원이 미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수정 적자액 폭이 93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예상하고 추가적인 자구방안을 찾고 있다. MBC도 엄기영 사장이 직접 올해 광고폭락 상황을 밝히는 등 적자폭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엄 사장은 지난달 29일 사원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10∼12월 3개월 동안 광고매출이 전년 대비 500억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MBC는 이대로 갈 경우 올해 25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MBC 광고국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해 11월 더 안 좋아질 것”이라며 “<뉴스데스크> 광고판매의 경우 50%도 안 되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뉴스데스크는 광고가 3개 정도만 붙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잘 나가는 인기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광고도  겨우 완판될 정도다.

SBS 역시 최근 발행된 사보에서 4분기 광고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45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SBS는 또 영업수익이 320억 원 감소하는 반면, 영업비용은 49억 원 증가해 올해 영업이익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BS는 3분기(9월)까지 광고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27억 원(12%) 정도 줄었고, 이에 따라 매출도 9% 정도 감소한 상태다. 신생 방송사인 OBS의 광고비 역시 개국 당시 예상했던 액수를 훨씬 밑돌고 있다. 당시에는 한 달 50억 정도를 계획했으나 개국 초기(5억 원 미만)보다는 낫지만 현재도 10억 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비상경영 어떻게…엄기영 사장 “고통분담“ 호소

이런 경영악화 상황 타개를 위해 방송사들은 저마다 자구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S는 불요불급한 사업축소·섭외성 경비 삭감 등의 방안 외에 인건비 축소 등 구조조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주 홍보팀장은 “인건비와 자본투자 등 경직성 경비를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인데 이를 위해선 사원들이 위기의식을 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는 또 최근 마련한 가을개편안을 통해 경비절감 차원에서 외부 출연진을 대폭 줄이고, 기자와 아나운서 등 내부 인력을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는 9일 막을 내리는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의 속편 <천추태후>는 광고가 붙지 않는 대하드라마의 성격을 감안해 내년 1월1일로 방영 시기가 연기됐고, 최근 종영된 <돌아온 뚝배기>는 적자를 면치 못해 아예 2TV 고정시간대(저녁 8시) 드라마 자체가 빠졌다.

엄기영 MBC 사장은 “내년에는 경제 사정이 더 나쁠 것으로 전망된다”며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조정과 절감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엄 사장은 또 “제작비 투입에는 경제성 원칙을 유념해야 하고 공영성 프로그램도 ‘보는 프로그램’, ‘효율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MBC는 제작비 경감 기조를 오는 11월17일 자 가을개편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MBC는 제작비 긴축을 위해 드라마 <내 여자>를 끝으로 주말특별기획드라마를 폐지하는 대신, 주말 예능프로그램 <명랑히어로>를 밤 10시30분대로 앞당기고 방송시간을 10분 연장하기로 했다. 대표적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도 방송시간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일부 프로그램을 폐지시키고 그 공백을 재방송으로 충당한다는 점이다. 또한 <생방송 화제집중>(월∼금, 오후 5시 35분)도 폐지하고 동시간에 ‘재방송’을 편성하고, 외주제작 프로그램인 <브레인 배틀>도 폐지하는 대신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가 재방송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SBS도 광고수익이 직접 제작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대체하고 고비용 저수익 프로그램을 저비용 프로그램으로 교체해 200억 원을 줄이고, △드라마 등 모든 프로그램의 제작비 집행 누수 방지 △해외촬영 억제 △인적 제작요소 비용 및 출연료 절감 △제작비 과다 집행 프로그램 관리 강화 등 제작비 집행 효율성 강화로 50억 원을 절감하는 등 모두 250억 원의 비용절약안을 수립했다.

또한 SBS는 내년 봄 개편을 앞당기고, 연예인 위주의 외부인력 영입으로 방만했던 출연진을 내부 직원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CBS는 지난 9∼10월 광고 목표액이 미달했다는 판단에 따라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20%가량 줄이기로 했다. 또 광고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지난달 22일엔 추경예산안을 더 줄이기도 했다. OBS는 이번 가을 개편에서 새 프로그램을 신설하기 보다 재방송을 오히려 늘렸다. 봄개편과 함께 시작된 ‘5인5색쇼’ 중 <박경림의 살림의 여왕>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내부 반응 “효율성만 따진 편성” 우려도

일부 프로그램 개편과 관련해 지나치게 수익 효율성만 따진 무리한 편성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MBC <생방송 화제집중> 폐지 결정에 대해 시사교양국 한 PD는 “저녁 정규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시간대에 ‘재방송’은 유례가 없다”며 “시청자에 대한 예의도 아닌 안이한 편성”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한 PD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백분 이해한다고 해도 프로그램 ‘폐지’로 얻게 될 단기적 이익과 ‘재방송’으로 바꿔 잃게 될 손실을 과연 비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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