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고 듣는 지각작용이 있고 서로 어울림이 있고, 소통이 있는 한 이야기는 흘러 다니게 마련이며 우리는 이것을 언로(言路)라고 한다. 언로에는 대로도 있고 뒷골목도 있으며, 요즘은 대부분 무인신호대기로 바뀌었지만 가끔은 교통경찰관이 지키는 교차로도 있다. 어쨌든 세상살이에는 말의 뒤섞임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로를 오가는 매스미디어라는 강력한 매체가 쏟아내는 가공된 정보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좁은길이나 뒷골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대로에서 유통되지 않는 진짜 얘기들이 뒷골목에서 들려오기 시작해서 다시 대로로 흘러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댓글은 인터넷 소통의 본질이다

인터넷은 옛 시가지의 대로를 점차로 밀어내며 복잡한 뒷골목들을 하나의 그물망처럼 연결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의 뒤섞임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사람들은 대로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소식들에 대해서 한두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으며, 그러면서 자신들이 항상 독자나 시청자가 아니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인터넷 댓글은 이렇듯 대중매체의 일방향성을 극복하고 이용자들의 반박과 논평, 비판, 피드백을 실현함으로써 일찍이 장 다르시(Jean D’arcy)가 말한 “커뮤니케이션의 권리”(communication rights)를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표현수단이다.

대중매체가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표현하는 “악성 댓글”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악성 댓글”을 핑계삼아 정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에서 무엇이 모욕인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명예훼손이란 어떤 사실을 적시하여 특정인에 대한 평판을 깎아 내리는 표현행위를 함으로써 제3자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표현행위가 과연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인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모욕죄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경멸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추상적 관념을 사용하여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는 가치판단을 표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과연 문제의 표현이 모욕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추진하는 ‘사이버 모욕죄’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현재 형법 상 모욕죄를 당사자의 문제제기가 있을 때에만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친고죄로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반의사불벌죄’로 하겠다는 데에 있다. “당사자가 문제삼겠다는 의사와 무관하게 우선” 검찰과 경찰이 “자신들이 ‘모욕’에 해당된다고 간주하는 인터넷상의 게시글(주로 댓글)”에 대해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조중동 광고주불매운동의 피의자들에 대해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업체들의 명단과 피해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은 채 일단 수사에 착수하고 우선 출국정지조치부터 내렸던 것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댓글달기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일반 시민들에게는 검찰과 경찰이 나서서 조사를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내린 출국정지 조치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움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는 이미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수사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단 몇 번만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진다 하더라도 네티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더 이상 댓글달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불분명한 주관적 잣대에 의한 검경의 인터넷 댓글에 대한 감시와 조사가 시작된다면 장 다르시가 말한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는 질식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현재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 검열국가의 우선순위를 우리가 차지하는 영광(?)을 누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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