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른바 ‘동아대 자주대오 간첩단’사건 관련자 5명이 항소심공판에서 원심을 뒤집고 간첩혐의에 관해 ‘마침내’ 무죄선고를 받자 여기저기서 우리 수사기관의 강압·짜맞추기 수사관행 등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대응을 하자는 여론이 드높다. 그 대응대상에서 과연 우리 언론은 예외일 수 있는가.

현재 항소심에서 간첩누명을 벗은 배윤주(여·29·동아대 일문과 졸·외국어학원 강사) 등은 지난해 9월10일부터 차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될 때만 해도 언론에 그저 평범한 ‘학생운동권’ 전력의 시국사범 정도로만 비쳤다.

연합통신사가 같은 달 29일자로 부산지방경찰청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시지부 수사자료임을 전제, 이들이 지난 94년 일본에서 노동당 입당식을 갖고 대학에서 후배포섭 등 간첩활동을 벌여왔다는 내용의 장문(長文)의 기사를 각 언론사로 송신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가족 변호인 등이 당장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수사기관의 태도. 애당초 각 언론사 일선기자들은 경험이 적쟎았던 탓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폭로된 ‘자주대오 사건’을 이른바 ‘북풍사건’의 하나로 보는 입장이었다.

다만 여느때처럼 공안사건이라 경찰의 수사결과를 예의주시해왔다.
하지만 갑자기 특정언론을 통해 일부 사건내용이 흘러나왔으니 기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그러나 정작 안기부나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수사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이들 기관이 ‘혹 쏟아질지 모를 언론의 비판화살’을 피하면서 실적은 실적대로 올리는 ‘고도의 언론플레이’였다는 사실은 이후 곳곳에서 드러났다. 부산지방경찰청 출입기자중 중앙지 한 주재기자는 “본사에 연락해보니 안기부 관계자가 회사 고위간부에게 전화를 걸어와 ‘큰 사건을 했다.

연합통신의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이니 그대로 쓰면 된다’고 했다며 기사독촉을 해왔다”고 동료출입기자들에게 털어놨다.

당시 부산지방경찰청 출입기자였던 필자도 같은달 13일께 지인을 통해 “안기부 한 관계자가 경찰청 출입기자중 아는 기자 있으면 얘기해줘라며 ‘당시 부산진경찰서에 유치돼있던 배윤주가 단순 시국사범이 아닌 간첩이니까 눈여겨 봐두라’고 했으니 잘챙겨라”는 말을 들은 터였다.

뒤늦게 이들 기관이 채 영글지도 않은 수사내용 일부로만 희대의 언론플레이를 펼치려 한 것으로 판단한 일부 기자들은 본사 및 데스크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수사기관은 정작 수사조차 아직 안됐다고 하는데 통신기사에만 의존해 적는 글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튿날 동아일보는 ‘한총련에 간첩침투 혐의…일본 어학연수중 북노동당 가입, 후배포섭 친북투쟁 주도 지시’라는 제목의 해당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조선일보도 ‘대학생 등 7명 북노동당 입당’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결국 언론은 이번 ‘간첩수사’의 무리수를 감시할 겨를도 없이 오히려 수사기관에 앞서 그들을 간첩으로 단정지었다. 아니 이쯤되면 간첩으로 몰아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그후 사건에 대한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도 전에 당시 사건수사를 지휘한 부산지방경찰청의 당시 윤도계 보안과장은 그해 10월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녹조훈장까지 받았으며 또다른 수사 책임자인 이문기 보안수사대 3대장도 총경으로 승진하는 등 관계자들의 영예가 잇따랐다.

그들의 ‘잔치’는 이미 그렇게 다 끝났는데 지금까지도 언론은 무엇을 하고있나. 요 며칠새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움직임’만을 간간이 내보내고 있다. 자성의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