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아침 찾아오는 북한의 너구리 한 마리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지상파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북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우려했던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선전-선동은 찾아볼 수 없다.

EBS가 지난 3일 첫 선을 보인 북한 애니메이션 <령리한 너구리>(수요일 오전 9:25∼9:40)에는 너구리, 곰, 야옹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서로 친하지만 놀이와 경기를 하며 아이들이 그렇듯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너구리가 평소에 배웠던 과학 지식을 활용해 해결하기 때문에 ‘령리한 너구리’라고 제목이 붙여졌다.

<령리한 너구리>는 별도의 더빙없이 방영된다. 그래서 ‘수영장’은 ‘물놀이장’으로, ‘수상스키’는 ‘물스키’로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과 억양이 그대로 나온다. 우리 정서에 맞게 더빙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원작을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과, 북한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결국 그대로 방영하게 됐다.

다만 어린이들이 만화를 볼 때 북한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직전에 ‘북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EBS는 남북 방송교류 차원에서 지난해 10월 15일∼19일까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방송인토론회 및 영상물소개모임’에서 <령리한 너구리>를 구매했다. 다른 지상파방송에서도 EBS가 구입한 내용과 다른 <령리한 너구리> 시리즈를 구입했지만, 아직 정규방송에 편성하지는 않은 상태다.

<령리한 너구리>는 197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90년대까지 100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꾸준히 만들어진 작품이다. EBS는 이 가운데 94년에 제작된 에피소드 9개를 구매했다.

남한길 EBS PD는 “북한의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선전, 선동적인 색채가 덜해 ‘령리한 너구리’를 구매하게 됐다”며 “구매한 9개의 에피소드가 4월 말 끝나게 되면 5월부터 재방송으로 편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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