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쓰고 빠지기’ 보도행태와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사안에 대해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보도태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23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제기한 ‘민주당 의원들이 성상납을 받았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언론이 비중있게 다뤘다.

그러나 불과 1주일이 조금 지난 지금 홍의원의 성상납 주장은 지면에서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24일 같은 당 정형근 의원은 정보기관의 청와대 도청자료라면서 “대한생명 매각에 박지원 비서실장, 노무현 후보, 한화갑 대표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정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일약 국감정국의 핵으로 떠올랐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크게 다뤘다.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사실이라면 노후보는 사퇴해야 한다면서 일부 언론은 연일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버금가는 ‘지면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불과 1주가 지난 지금 이 문제에 대해 후속보도를 내놓거나 실체규명을 다시 촉구하는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외압설을 주장하는 정당이나 신문들이 마치 일순간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외압설은 순식간에 지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같은 정치권의 ‘치고 빠지기’와 대비되는 언론의 ‘쓰고 빠지기’는 그간 숱하게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전혀 개선 없이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6일자에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4억불 북한 제공설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북에 4억불 전달 의혹”> 제하의 이 기사에서 조선은 “현대상선이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4900억원을 대출받았으며 이 돈은 바로 현대아산으로 건너가 북한에 넘어갔다”는 엄의원의 주장을 자세히 전했다.

다음날인 27일자는 <현대상선 산은 대출금 4억달러“현대아산에 유입” 확인> 제하 1면 머릿기사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소식통들이 현대아산으로 대출금이 들어갔다고 확인했으며 대출금의 북한 제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8일자 <산은 대출금 4900억 중 3000억 현대상선 부채처리안해> 제하의 1면 머릿기사에서는 ‘현대아산’ 관련 부분이 지면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당좌대월로 받은 4000억원 중 3000억원이 장부에서 누락돼 용처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는 내용과 김문수 의원이 주장한 ‘국정원을 통한 대출금 제공설’을 보도했다. 바로 어제 날짜 1면 머릿기사에서는 현대아산을 통한 자금제공에 ‘확인’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무게를 실었다가 다음날 곧바로 ‘국정원 창구설’로 스스로의 보도를 뒤집은 것이다.

조선일보에선 그 이후 현재까지 관련기사에서 대북송금 창구가 현대아산이라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27일자 현대아산 창구설을 다룬 머릿기사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설명이 없다. 북한에 준 것으로 의심되는 돈의 규모도 애초 ‘4900억원’에서 ‘용처가 불분명한 돈 3000억원’으로 바뀌었다. 일요일을 쉰 다음 30일자 초판도 역시 머릿기사는 대북 지원설이었다.

조선은 30일자 배달판에서 1면 머릿기사를 <김대업 테이프조작가능성>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26일자부터 2일자까지 무려 5일치의 머릿기사를 연이어 ‘대북 자금지원설’로 도배했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은 대북지원설 실체규명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한 쪽은 현대와 청와대, 정부 등에 보다 큰 규명 책임을 묻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쪽은 검찰 등 계좌추적권이 있는 기관이 나서면 금세 전말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애초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이 검찰 고발을 하지 않고 대선 때까지 호재로 이용하면서 끌고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안이 터진 뒤 현대상선에 상주하면서 취재하고 있는 한 일간지 기자는 “북한에 들어갔다는 돈의 규모가 워낙 크고 의견이 아닌 사실이냐 아니냐의 팩트 문제이므로 현 정권의 범죄인지 애꿎은 모함인지 반드시 가려내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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