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억울해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5·18 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한국당의 5·18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지연, 망언 의원 늑장 징계 등이 논란이 되자 한국당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18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진상규명위원회의 경우 이미 자격이 충분한 위원을 추천했지만 청와대가 이를 이유 없이 거부해 출범이 늦어진 것”이라며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18일 “우리가 역사를 부정하고 5·18 정신을 폄훼한다는 지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한국당은 한국당 집권기였던 김영삼 정부 시절 5·18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라고 선언했고 △5·18 민주묘역 조성을 지시했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이 날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사실을 강조했다.

▲ 지난 18일 5·18 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민들 반발에 도망치 듯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18일 5·18 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민들 반발에 도망치 듯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당의 말만 들으면 한국당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상조사위원 추천’의 경우 한국당 추천 위원이 특별법이 정한 자격 요건에  충족되는지 여부를 두고 청와대와 한국당 간 논쟁이 이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당 추천 인사 가운데 신군부의 광주 학살을 부인한 기사를 쓴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해온 차기환 변호사를 추천한 점이 근본적 문제였다. 지난 1월 5·18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하고 훼방 놓을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들”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5·18에 대한 한국당의 태도 역시 한국당의 주장과는 다르다. 5·18 정통성을 부인하는 듯한 내부의 ‘다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전두환씨가 만든 민정당과 김영삼계 등의 통합으로 이뤄진 한국당의 복합적인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 지난 3월 7일 추혜성 광주 5월어머니집 이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5·18 망언 국회의원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3월 7일 추혜성 광주 5월어머니집 이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5·18 망언 국회의원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당이 집권한 지난 9년 동안 ‘5·18 흔들기’는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사건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주도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다.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 지정 요구를 거부하고 5·18 행사 때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바꿔 5·18단체가 참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논란은 북한의 대남 선전영화에 이 노래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논쟁의 한 축으로 만들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종결되자 고개를 든 프레임은 ‘북한군 침투설’이다. 2013년 일부 극단적인 인사들 사이에서만 돌던 북한군 침투설을 TV조선과 채널A가 다루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5·18 유공자가 특혜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유공자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프레임도 함께 힘을 받았다.

5·18 흔들기에 한국당은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3년 종편이 북한군 침투설을 보도할 당시 유수택 최고위원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을 극우세력이라고 부르며 “광주시민의 자존심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2017년 5월18일 정준길 대변인은 “5·18 유공자 선정 절차 및 대상자의 문제점,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의혹 등 5·18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까지도 함께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2019년 2월 지만원씨를 초청해 북한군 침투설을 다룬 한국당 의원들의 토론회는 이 같은 ‘다른’ 목소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한국당의 ‘극단 네트워크’는 두드러졌다. KBS 이인호 이사장, MBC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처럼 극단적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의 대표자가 되었던 것이 일례다. 차기환·조우석 등 5·18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인사들은 정부여당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가 되었다. 

▲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사진=민중의소리.
▲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사진=민중의소리.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이후 한국당 지지층에서 권위주의 정부에 향수를 가진 태극기 부대가 분화하고, 수세에 몰린 한국당이 이들을 포용하면서 태극기 부대가 당 내 존재감까지 드러내는 상황이 됐다. 

실제 이 시기 한국당은 태극기 부대 인사들을 등용한다. 2017년 7월 한국당은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등 극단적 언행을 보여온 ‘상진아재’ 김상진씨를 한국당 몫 네이버 뉴스편집 자문위원으로 추천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당은 태블릿 PC 조작 의혹 제기를 해온 이상로 전 MBC 기자를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추천했다. 이상로 위원은 심의 과정에서 북한군 침투설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유공자 프레임을 부각한 ‘신의 한수’는 한국당 주요 일정 중계, 당 지도부 인터뷰 등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고 최근 한국당은 북한군 침투설을 옹호하는 유튜버를 당 행사에 초청하는 등 이들 그룹과 적극적인 유대 관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전당대회는 극단적인 그룹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유세 현장에서 태극기 부대가 세를 과시하고 5·18 망언 당사자인 김순례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이들의 영향력을 확인한 한국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는 5·18 정신을 잇는다고 강조하면서도 돌아서면 망언 의원 징계에 나서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5·18 39주기 기념식 당일 표창원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당은 최근 5·18 왜곡 발언 옹호하는 유튜버들을 토크콘서트에 초청했다”며 광주 방문의 진정성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하며 “(행사 참석은) 영남 등에 타 지역 시민들에게 광주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 아니겠나”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다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당이 김영삼 정부의 노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 한 황교안 대표가 다시 광주를 방문해도 같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정부여당을 탓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당을 흔드는 건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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