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해치’ PD가 겪은 68시간 노동의 변화
SBS ‘해치’ PD가 겪은 68시간 노동의 변화
이용석 PD “졸음과 싸우지 않아 좋지만… 제작비 인상에 일자리·다양성 줄까 걱정”

지난달 30일 24부작(48회)으로 종영한 SBS 드라마 ‘해치’를 연출한 PD가 주 68시간 노동을 지킨 소감을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오는 7월부터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주 52시간 노동을 준수해야 한다.

이용석 SBS 드라마 PD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 하반기부터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드라마 제작 현장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노동 현장에 적용된다고 한다. 저는 이번에 주 68시간 체제에서 제작을 해봤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주 68시간을 드라마 현장에 적용하려면 15시간 노동을 4일 할 수 있고, 8시간 노동을 1일 정도로 제작 일정을 잡아야 한다. 주 5일 근무다.

이 PD는 “제도 도입 전 16부작을 제작할 때 보통 총 촬영일수 100일 정도를 예상한다. 24부작일 때는 150일 정도로 촬영일수를 예상하고 예산을 수립한다”며 “해치는 24부작이라 애초 150일 정도로 봤다. 그러나 새 제도에서 150일에 촬영을 마치는 게 어려워 보였고, 20일 정도 추가 촬영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170일 일정으로 예산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드라마의 경우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2시에 촬영을 마치는 일정으로 하루 촬영 계획을 세웠다. 제작비를 아끼고자 하루를 다 쓰되, 스태프 수면 시간은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현실이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촬영이 자정을 넘겨 새벽 2~3시에 끝나는 게 다반사. 휴게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어 다시 오전 7시에 모이는 일도 적지 않았다.

▲ 지난달 30일 24부작(48회)으로 종영한 SBS 드라마 ‘해치’를 연출한 이용석 SBS PD가 주 68시간 노동을 지킨 소감을 밝혔다. 사진=이용석PD 페이스북
▲ 지난달 30일 24부작(48회)으로 종영한 SBS 드라마 ‘해치’를 연출한 이용석 SBS PD가 주 68시간 노동을 지킨 소감을 밝혔다. 사진=이용석PD 페이스북
이 PD는 “해치팀은 대부분 오전 8시 시작해 밤 11시 끝나는 일정이 주어졌고 제작진 촬영 속도와 진행이 원활한 편이어서 일정을 잘 지켰다”며 “밤씬(scene)이 많은 날은 아예 오후 늦게 모여 밤을 새우는 스케줄이 작성됐다. 오후 4시에 모여 밤새 촬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PD는 ‘필수 휴식시간 8시간 보장’, ‘촬영 지연 시 사전 양해’ 등도 약속하고 지켰다.

이 PD는 “해치 제작진은 노동시간을 지켰다. 촬영일수 170일을 예상했으나 169일에 촬영을 마쳤다”면서도 “주 68시간 노동을 정말 겨우 맞췄다. 만약 올 하반기 도입되는 주 52시간 체제에서 일했다면 저는 노동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경력 26년이 넘어가는 숙련된 연출이다. 비교적 촬영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그런 제가 노동시간을 겨우 맞춰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드라마 대부분의 연출자나 제작진은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남겼다. 이 PD는 “연출자로서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체력을 극한까지 써가면서, 졸음과 싸우면서 일하지 않은 게 처음이었다. 촬영 현장 여기저기 고개를 기대고 졸고 있는 스태프가 없어서, 현장에 생기가 넘치는 것도 좋았다”면서도 “제작자 입장이라면 걱정이 많다. 돈이 많이 든다. 새 제도에서 드라마 제작을 하려면 촬영일수가 늘어나야 하며 촬영일수를 확보하려면 제작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수익성은 줄어드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하다. 해치도 방송사 입장에서 수십억의 적자를 봤다”며 “MBC가 월화드라마를 없앴다. SBS도 올 여름 월화드라마를 두 달 동안 방송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상파가 새롭게 택한 전략이고 앞으로 드라마는 지상파에서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PD는 1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나는 촬영, 제작을 빠르게 하는 편이다. 내가 겨우 제도를 준수할 정도면 다른 연출자들이 겪는 부담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드라마 시장은 과다 경쟁으로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며 “노동자 복지와 삶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인데, 한편으로는 (드라마 시장 위축으로)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 PD는 “지상파에서 단막극이 없어졌고 앞으로는 사극도 없어지지 않을까 전망한다”며 “(새 제도 도입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면 그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다양성도 사라지는 상황이 올까 여러 걱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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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05-17 15:50:17
완벽한 정책은 없다. 노/사가 다 양보해야 한다. 양보하지 않고 서로 대립만 한다면, 가장 취약한 노동자부터 과로사로 죽을 것이다. 모든 것을 수익의 관점으로 본다면(연봉), 민영화가 최고다. 근데, 도쿄전력(후쿠시마 원전)과 엔론(분식회계)을 봐라. 자신의 돈, 연봉부터 생각한다면 민영화의 늪에 빠져, 공익과 공공성은 사라지고 서로 거짓말만 하는 한국사회가 될 것이다. 부정/부패한 사회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 우리부터 노사가 잘 타협하고, 돈에 대한 욕심을(자신 포함)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