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법안들은 많다. 그러나 폐기될 운명 아닌가.” 여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에게 과방위 평가를 요청하자 나온 답이다.

문재인 정부와 함께 과방위가 2년을 보냈다. 정권 교체 후 과방위는 미디어 개혁의 주체가 될 거라는 기대를 모았다. 정권 교체 직후까지 한국당 과방위원장이 주도했던 전반기와 달리 2018년 하반기 원구성 때 여당 소속 노웅래 위원장으로 교체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우선 한국당의 저지만으로 의사일정에 제동이 걸리는 일은 피했다. 지난달 KT 청문회 때 한국당 의원들은 당일까지 보이콧을 하며 일정을 늦추자고 했으나 의사봉을 쥔 노웅래 위원장이 양보하지 않자 입장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한국당이 보이콧해 국정감사까지 차질을 빚은 상황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다.

상임위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법안을 심사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둘로 나눠 쟁점이 적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학기술·원자력을 전담하는 소위를 만들어 속도를 내고, 방송통신분야는 별도 소위를 통해 집중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 지난 4월 KT 청문회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간사가 회의 진행에 반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4월 KT 청문회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간사가 회의 진행에 반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법안 처리에 있어 과방위는 ‘불량 상임위’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했다. 지난해 미디어오늘이 시민단체와 함께 선정한 좋은 법안인 ‘유료방송 시청자위원회 설치’(최명길), ‘방송협찬제도 투명화’(신경민) 등 법안은 제대로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20대 과방위 최대 이슈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은 여전히 소위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여당일 때는 여야 이사의 숫자를 엇비슷하게 두고 사장 선임시 이사회 3분의 2의 동의를 받는 특별다수제(박홍근 의원안)를 요구했다. 야당이 ‘결격’후보로 정하면 선임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권 교체 후 시민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법안을 새롭게 제안했고 야당이 된 한국당이 민주당 의원인 박홍근 의원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방송 이슈는 그 자체로 정치쟁점화돼 대립이 이어지는 데다 공수교대에 따라 여야의 입장이 바뀌었다. 비교섭 단체 소속 과방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입장 변화는 정무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시민을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언론개혁 외의 현안에도 과방위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유료방송 점유율 상한을 도입하는 ‘합산규제’ 법안은 과방위의 난맥상을 드러낸다. 케이블과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이 사실상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가입자 점유율을 합산 33% 상한을 두는 이 규제는 19대 국회에서 ‘3년 일몰’로 제정해 추후 재검토하기로 했으나 기간이 끝날 동안 과방위는 아무런 논의도 하지 못해 지난해 폐기됐다. 그러다 갑자기 올해부터 재논의를 시작했으나 의원별로 입장이 달라 지지부진하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은 국회가 ‘양당의 정치적 대립’이 일상화된 식물국회라는 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과방위는 ‘비인기 상임위’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의원 입장에서 지역구에 유치할 게 많은 ‘문화체육관광’이 빠지면서 기피 상임위가 됐다. 언론, 과학계와 인연이 있거나 비교적 선수가 낮은 의원들이 과방위에 모인다.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과방위는 이슈는 복잡하고 어렵고 이해관계자들끼리는 박 터지게 싸우는데 의원 입장에서 언론에 부각될 것도, 지역구에 해줄 것도 없어서 답답해 했다”고 전했다.

상임위 ‘플레이어’들도 다르다. 매체별로 대립하고, 때로는 같은 매체끼리도 격돌한다. 전 과방위 관계자는 “피감기관을 보면 정무위가 상대하는 금융권과 달리 플레이어들이 규제완화를 일관되게 요구하는 사업자들이 아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통신사, 포털 등 사업자들이 대립한다. 더구나 이들은 힘이 강하다. 통신사는 막강한 로비를 하고, 방송사는 보도를 무기로 쓸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규제 논의 국면에서 방송통신 대관 인력들은 자사에 유리하고 경쟁 매체에 불리한 요구를 하기 위해 과방위 의원실에 줄 지어 선다.

20대 국회 과방위의 입법 성과가 해외 사업자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박대출 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대리인제’ 법은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사업자에 개인정보 담당 대리인을 의무적으로 지정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구글 등 해외 사업자 비판 정서에 국내 사업자 간 갈등도 없어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과방위의 특성은 필요한 법안을 제때 논의하지 못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김성수 의원의 통합방송법안은 세부 내용에는 이견이 있지만 법안 자체는 꼭 필요했다. 그러나 힘이 붙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정립된 방송법을 손 보는 작업은 일찌감치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수 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해 의원들이 외면해왔다. 김성수 의원이 총대를 멨으나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디어 개혁에 대해 명확한 당론이나 ‘주요 추진 법안’을 찾아보기 힘든 점에서는 정부의 책임도 거론된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김동찬 처장은 “정부 차원에서 미디어 개혁에 의지가 없다. 미디어 개혁의 실종이라고 본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이 있었지만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당 차원에서 힘을 주고 추진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 여당 과방위 관계자도 “정부는 언론자유를 강조하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정책을 세우는 데도 소홀한 면이 있다”고 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김대중 정부 때처럼 미디어 제도 전반을 논의하는 기구 설치를 여러번 제안했으나 정부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같은 구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전 과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학습효과 때문에 의원들도 이 상임위를 기피하고, 배정 받더라도 2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일하는 거 같다”고 했다. 

지역구에 해줄 것도 없고 일 처리가 안 되는 상임위기에 의원들이 입법이 목적이 아닌 공세성 법안에 몰두하는 경향으로도 이어진다. 20대 국회 과방위에서 가장 화제가 된 법안은 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엄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은 ‘드루킹 방지법’ ‘가짜뉴스 규제법’ ‘인터넷 방송 규제법’이었다.

야당 과방위 관계자는 “내년에 총선이 있어 사실상 6월 국회를 지나면 논의하기 힘들다. 현실적으로 20대 국회 과방위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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