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 ‘양대노총 와해와 제3노총 건설 공작’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국정원 돈이 당시 제3노총 위원장에게 전달된 정황이 드러났다. 돈 받은 걸로 지목된 정연수 당시 제3노총 위원장 겸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정 전 위원장은 국민노총이 ‘MB노총’이라는 비난과 함께 양대노총 와해의 주범이라는 지적에 “정권이나 국정원의 일방적인 그림이었을 뿐”이라며 “억울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31일 원 전 국정원장과 이 전 장관, 국정원의 민병환 전 2차장과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이동걸 전 노동부 장관정책보좌관 등 5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국고 등 손실)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 사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7700만원을 제3노총인 국민노총 설립·운영자금으로 지원하는 등 국정원 직무가 아닌 용도로 예산을 쓴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국정원장은 민주노총과 전교조, 전공노 등 3개 노조를 ‘3대 종북 좌파세력’으로 규정하고 좌파 척결을 통한 국가정체성 확립을 지휘방침으로 강조했다. 검찰은 이런 사실 등을 근거로 국정원이 민주노총을 분열시키기 위해 제3노총을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2011년 12월19일 국정원 소속 담당 IO는 피고인들에게 순차로 국민노총 지원방안을 지시 받았고 ‘고용노동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추진 지원’이란 이름으로 예산담당자에게 두 차례에 걸쳐 2000만원을 받아 정 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 정연수 전 국민노총 위원장. 사진=노컷뉴스
▲ 정연수 전 국민노총 위원장. 사진=노컷뉴스
검찰, 국정원IO가 제3노총 위원장에 2000만원 전달
정연수 “특활비 받은 적 없어, 사무실 한 칸도 지원 없어”

정 전 위원장은 지난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국정원이 자기들끼리 그림을 그리고 (양대노총 와해를) 기획했을 순 있지만 실제로 국민노총이 지원 받은 건 없다”며 “(국정원 IO에게) 2000만원 받은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 전 위원장은 국정원 직원을 만난 사실은 인정했다. 정 전 위원장은 “(국정원에선 노조를) 담당하니까 두 세 번은 만났지만 지원받은 건 없다”고 했다.

▲ 검찰공소장에 나온 ‘범죄일람표’.
▲ 검찰공소장에 나온 ‘범죄일람표’.

공소장을 보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민주노총 내부에서 일부 기업별 노조들이 탈퇴할 움직임을 보이자 국익정보국 소속 IO들은 기업체 노사관계자를 설득하거나, 노조위원장 선거 시 강성후보의 선거전략 등을 파악해 온건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이후 온건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했다.

그러던 중 2010년 3월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서울메트로 등 42개 노조가 예비조직인 ‘새희망 노동연대’를 출범시키고 제3노총 설립을 모색한다는 사실을 알자 국정원과 노동부는 제3노총을 적극 지원해 민주노총을 제압하기로 계획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노컷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노컷뉴스
반면 정 전 위원장은 당시 국정원과 정부가 국민노총을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뿐 국민노총은 기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3노총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부터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을 내리 3선 하면서 상급단체 관련해서 조합원 여론조사를 했는데 민주노총을 선택한 비율이 한자리수로 나왔고 국민노총 설립 전에 해고자가 20여명 되는 등 노조 상황이 어려워 새 노총 설립을 준비했다”며 “2008년부터 3년간 세 차례에 걸쳐 참여정부에서 노동부를 이끌었던 김대환 전 장관 사회로 노동운동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ILO와 OECD 등이 13차례 복수노조 허용을 권고하자 2011년 한국 정부도 복수노조를 허용했는데 840개 노조가 새로 생겼다”며 “현대차 KT지부에 국민노총 들어갈 것을 종용했다는 내용도 있던데 국민노총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 객관적인 사실은 다 외면하고 어용노조라고만 하더라”라고 말했다.

국민노총은 ‘MB노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용노선’과 ‘탈이념’을 외치며 2011년 출범했다가 이명박 정권이 수명을 다할 즈음인 3년 만에 한국노총에 흡수됐다. 이에 정 전 위원장은 오히려 국민노총이 소외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은 건물도 임대해주고 지자체에서도 지원을 받는데 국민노총은 사무실 한 칸 내준 게 없다”며 “양대 노총의 반발이 심해 오히려 내가 노동부에 우리가 받는 차별에 대해 항의를 많이 했다”고 했다.

▲ 이채필 전 노동부 장관. 사진=노컷뉴스
▲ 이채필 전 노동부 장관. 사진=노컷뉴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노컷뉴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노컷뉴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채필 전 장관은 국정원 IO에게 “국민노총은 대통령(이명박) 관심 사업이니 홍보전문가 영입, 활동비, 사무실 임차 등 총 4억14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재원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며 “노동부 예산에서 전용하는 걸 검토했지만 기존 한국노총·민주노총의 강한 반발과 추후 어용시비가 예상돼 포기했으니 국정원이 3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만 실제 지원은 없었고, 다만 국민노총 설립 과정에서 술값 등으로 국정원이 돈을 썼을 수는 있다는 게 정 전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국정원에서는 활동비로 국민노총 설립 지원을 계획하고 돈을 썼다고 보고했겠지만 국민노총은 오히려 차별을 받았다”며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확인한 건데 국민노총 조직할 때 식사비를 냈다든가 한 걸 봐서 국정원 쪽에선 술값·밥값내주며 돈을 썼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실제 정책적으로 지원받은 건 없다”고 말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이동걸 전 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은 국정원에서 받은 돈으로 국민노총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노조원을 만나 국민노총 합류에 설득하는 작업을 위한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2014년 12월 국민노총은 한국노총에 흡수통합됐다. 정 전 위원장은 “노총 운영이 안되고 하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에서 제안이 왔다”며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서 제대로 지원했다면 모범적인 노사문화의 스테레오 타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노총의 장단점을 분석해가며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는데 탄압을 받아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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