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낙태죄 위헌여부 결정 임박… 사회변화 반영하나
헌재 낙태죄 위헌여부 결정 임박… 사회변화 반영하나
지난해 공개변론 이후 결정 늦어져, 헌재소장 “조속히 평의해야”… 다수 언론, 낙태죄 폐지에 힘 실어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가 오는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맡긴 국내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곧 결정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2017년 2월 한 산부인과 의사가 69회에 걸쳐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의사는 형법 제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낙태죄’는 1912년 일본 제국주의 의용형법에 근거했다. 1953년 제정해 65년 넘게 임신중절을 금지한 해당 형법 조항들을 보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낙태죄 찬반을 차치하고서라도 여성과 의사만 처벌하는 차별 요소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 2012년 낙태죄 처벌규정을 ‘합헌’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6년 사이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명이 낙태죄 폐지를 요청했고 조국 민정수석이 “태아 대 여성의 대립 구도를 넘어야 한다”고 답해 폐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지난해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지난해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지난해 9월 유남석 헌재소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판부가 새로 구성되면 낙태죄 사건을 조속히 평의하겠다”고 밝혔다. 신임 재판관 3명이 연말 임명됐고, 오는 4월 서기석·조용호 두 명의 재판관이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결정이 날 가능성이 있다. 위헌 정족수는 6명이다.

낙태는 죄, 태아도 생명

2012년 당시 4명의 헌재 재판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태아를 생명으로 봐 ‘합헌’ 의견을 냈다. 지난해 5월 헌재가 주최한 공개변론에서 낙태죄 합헌 측인 법무부 대리인단 “의사의 기본 임무는 생명 보호”라며 낙태한 의료진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변론서에 임신중절을 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 결과인 임신·출산은 원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일부 종교계도 처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기 단계에서 생명을 고의로 없애버리는 것은 우리의 운명에 대한 배신”이라며 임신중절을 죄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에도 그는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여성은 문제 해결을 위해 청부살해업자를 고용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해 수술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규칙을 공포하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절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복지부는 하루 만에 행정규칙 시행을 당분간 보류하겠다며 물러섰다. 복지부는 지난 2016년 9월에도 의사면허 자격정지 대상인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이 있는데 자격정지기간을 1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하겠다고 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난해 경남 남해경찰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압수한 자료로 산부인과에 방문한 여성 환자를 하나하나 연락해 임신중절 여부를 취조한 사실이 알려졌다. 정부기관 곳곳에서 임신중절 처벌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지난해 11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지난해 11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형법 뿐 아니라 모자보건법도 시대착오적

형법에선 임신중절을 금하고 있지만 모자보건법에선 임신중절을 일부 허용한다. 1973년 개정해 45년 넘게 이어져온 모자보건법 14조를 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간 임신한 경우 △임신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한해 24주 이내에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한다.

기형아를 유발할 모체의 전염성 감염은 임신중절 수술 허용 사유지만 무뇌아 같이 생존 불가능한 기형아로 확인된 태아의 임신중절수술은 허용하지 않는 건 모순이다. 이미 2010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원 75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에 응답자 97.9%가 찬성했다. 낙태죄를 사문화한 상황에서 모자보건법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신중절할 권리, 건강권이자 인권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성향 매체가 아니라도 언론은 대부분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실었다.

헌재 공개변론이 있던 지난해 5월 서울신문은 사설 “헌재, 낙태죄의 현실적 괴리 직시해야”에서 “헌재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와 변화된 시대 요구 등을 반영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한국일보는 “사회적 합의 필요성 재확인시킨 낙태죄 처벌 강화 소동”이란 사설에서 “낙태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해 4월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주간 칼럼
▲ 지난해 4월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주간 칼럼

보수 성향의 신문에서도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지난해 4월 칼럼에서 “낙태를 금지해 인구를 늘린다는 정책은 낙태로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만큼이나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낙태죄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며 모자보건법 개정을 주장한다.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는 지난 2016년 10월 조선일보 기고에서 “모자보건법 허용사유에 해당하는 임신중절은 5%로 추산되고 나머지 95%는 미성년 임신 등 ‘사회 경제적 사유’에 해당한다”며 “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사회 경제적 사유’를 추가해달라”고 주장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절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는 67개국에 이른다.

지난해 5월 공개변론에서 헌법소원을 낸 산부인과 의사는 “태아의 생명권보다 임부 자신의 결정권과 건강권 등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도 “낙태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국제기구 권고안을 기초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질 기본 권리로 보고 있고,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우려를 표하며 한국 형법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헌재 재판관 중 낙태죄를 부정 평가한 이는 유 소장 말고도 더 있다. 이은애 재판관은 “현행 낙태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고 말했고, 이영진 재판관도 “낙태죄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파에서 하는 수술로 태아를 살해한다’는 끔찍한 이미지로 굳어진 임신중절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알려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계보건기구 필수 의약품으로 등록된 미페프리스톤(미프진)은 임신초기에 몸에 큰 부담 없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핀란드 등은 임신중절의 90% 이상이 약물을 사용하지만 한국은 임신중절금지가 원칙이라 도입되지 않고 있다. 또한 태아를 긁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진공으로 흡입해 자궁에 무리를 덜 주는 방식도 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개인의 윤리·신념으로 낙태를 선택하는 것과 한국 사회가 임신중절을 선택한 여성을 죄인으로 보고 처벌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며 “안전한 임신중절을 받을 권리는 건강권이자 인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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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02-12 13:15:54
참 어려운 문제고, 세계 사례를 봐도 쉽게 단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낙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법치국가 시민으로서, (낙태죄에 대한 수많은 토론을 한) 재판관들의 판단을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