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2심 법원, 가해자에게 목소리 높이다
안희정 2심 법원, 가해자에게 목소리 높이다
재판부 ‘안희정 위력, 피해자가 언론 앞에 서는 극단 택하게 해’ 공대위 “언론도 바뀌어야”

도지사이자 유력 대권주자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2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적극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위력으로 볼 만한 무형력을 행사했다”며 원심의 무죄 판결을 깼다. 피해자 김지은씨 변호인단과 시민단체는 “1심이 김씨에 지운 ‘피해자다움’을 깬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판사가 판결문 읽기 시작할 때부터 (1심과) 다르다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검찰이 제기한 10개의 공소사실 가운데 9개를 인정했다. 홍동기 부장판사(형사12부)는 312호 법정에서 ‘위력’과 ‘성폭력 범죄’를 둘러싼 법리를 밝히면서 선고를 시작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중심적인 문화와 인식구조로 인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성정이나 가해자와 관계,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범죄는 “외부에 알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뤄지고, 피해자 외엔 증거나 목격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했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1회 공판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다문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1회 공판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다문채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안희정의 진술번복‧반성 없음 지적하며 커진 목소리

홍동기 부장판사는 안 전 지사 진술을 지적하는 대목에선 눈에 띄게 힘줘 낭독했다. 안 전 지사가 말을 바꾼 지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합의된 관계’였다는 안 전 지사 변호인단 주장의 모순도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지난해 3월 피해자 김지은씨가 생방송에 나와 피해를 폭로한 안 전 지사의 발언 번복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는 당시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 합의된 관계라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글을 게시했는데 검찰 조사에서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직접 작성한 글의 문헌상 의미를 부정했다”며 입장 번복을 짚었다.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관계를 주요하게 고려한 뒤, 안 전 지사가 재판 과정에서 펼친 ‘합의된 성관계’ 설명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첫 출장 당시 간음 사건을 두고 “안 전 지사가 △피해자가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미혼인 여성 비서를 자기 객실로 부른 상태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안 전 지사 자신의 발언도 혐의를 입증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씨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미안하다, 안 그러겠다, 잊으라’ 등 이야기를 반복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이런 행위가 김씨의 의사에 반했음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라고 봤다. 사건 뒤 안 전 지사가 김씨를 하급자로 대하는 태도도 바뀌지 않았고, 연인으로 취급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며 둘 사이 업무상 위력관계가 공고했다고 판시했다.

홍 부장판사의 목소리는 선고 마무리 시점에 가장 커졌다. 안 전 지사에게 불리한 정상과 함께 양형을 밝힌 순간이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씨의 폭로 뒤에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2차 가해를 유도했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드러낸 채 생방송에 출연하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 김씨는 극심한 성적 모멸감과 충격,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고,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근거 없는 내용이 유포되면서 추가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안 전 지사는 자기 범행을 극구 부인했고, 김씨는 피해 사실을 거듭 회상하고 진술해야 했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1심 재판부와 달리 ‘피해자다움’ 조목조목 논파

재판부가 가장 많이 거론한 안 지사 측 표현은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이다. 1차 공판 중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안 전 지사 측 주장은 “김씨가 피해 다음날 안 전 지시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식사메뉴 확인과 보고는 수행비서 업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업무를 중단하고 즉각 귀국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수행비서로선 당장 안 전 지사의 식사메뉴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1심 재판부의 ‘피해자다움’ 집착을 질책하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은 논리와 경험적 법칙에서 봤을 때 양립할 수 없는 사실들의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지, 관념이나 추상에 의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고인은 변명하거나 할 말이 있습니까.” 양형을 밝힌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선고를 마쳤다. 방청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대위 활동가와 변호인단은 고생했다며 법정 복도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 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피감독자간음 등 사건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피해자인 김지은씨 측 변호인단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밝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 기자회견장으로 향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피감독자간음 등 사건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피해자인 김지은씨 측 변호인단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밝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 기자회견장으로 향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 갈무리
▲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 갈무리

“사법부의 상식 공유에 안도... 미투 운동의 승리”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판결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40여명이 좁은 인도를 꽉 채웠다. 기자회견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김씨는 “안희정과 분리된 세상에서 살게 됐다.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로 살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지난 시간과 작별”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제 진실을 어떻게 밝힐지보다 어떻게 살지 더 고민하려 한다”며 “말했으나 외면당했던,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제 재판을 지켜본 성폭력 피해자들께 미약하지만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피해자 김지은씨 변호인단은 1일 항소심 선고가 끝난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오후 4시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피해자 김지은씨 변호인단은 1일 항소심 선고가 끝난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오후 4시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피감독자간음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성학연구자 권김현영씨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피감독자간음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선고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성학연구자 권김현영씨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앞서 1심 재판부에 의견서를 냈던 여성학연구가 권김현영씨는 “이번 판결은 미투 운동의 승리”라고 했다. 김씨는 “이 사건이 어렵다는 사람들은 엘리트층이었고, 유죄가 명백하고 확실하다고 여긴 사람들은 여성신입사원과 경력단절 여성, 불안정노동자들이었다”며 “사법부도 동시대 시민들 그리고 일하는 여성들의 상식을 공유한다는 점에 깊이 안도한다”고 했다.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2심 유죄선고를 환영하면서도 사법부뿐 아니라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공대위는 “가해자 말을 받아쓰기 하며 피해자 비난에 힘을 보태는 언론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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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2-01 23:14:56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안 씨에게 좋은 감정은 없지만, 대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너무 비난하는 것도 그렇다고 옹호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