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된 죽음 對 삶을 선택할 권리
구조화된 죽음 對 삶을 선택할 권리
[기고]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 완전 극복을 위해

‘사람이 죽었다!’

한국사회에서 이 말 만큼 가벼운 말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의 실수로 갓 태어난 아기들이 죽고, 독가스가 된 살균제로 죽고, 배가 침몰해 죽고, 불에 타 죽기도 한다. 사람이 죽지만, 그 죽음의 뒷길은 참으로 견딜 수 없이 공허하다. 은폐, 축소, 책임의 전가, 급급한 정상화, 정말 잘 돼야 한 두 명의 구속 정도가 인간이 만든 재난을 수습하는(?) 한국사회의 대처방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수습 뒤에는 다시 또 그런 일이 발생할 날을 기다리는 망각의 시간이 이어진다. 이 과정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만들어지고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김용균 님은 국가가 죽였다!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님의 죽음은 국가에 의한 타살이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현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일하도록 강제했고, 십 수 명이 죽었어도 방치했다. 이것은 죽음의 구조화다. 이미 태안화력은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재난의 현장이었다. 가해자는 국가 그 자체였으며, 피해자들은 보호받지 못해 왔다. 고 김용균 님의 죽음으로 이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가해자로서 가해자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는 사이 다행히 운이 좋아 살아남은 태안화력 노동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외상사건과 트라우마

▲ 박영식(가명)씨가 지난 2005년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일하다 왼발이 끌려들어가는 산재 사고를 당한 스태커 바퀴 모습.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박영식(가명)씨가 지난 2005년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에서 일하다 왼발이 끌려들어가는 산재 사고를 당한 스태커 바퀴 모습.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트라우마란 사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오는 신체적·정신적 증상을 말한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는 자연재해, 교통사고, 대형화재, 전쟁, 성폭력, 정리해고, 산업재해 등 다양하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거나 도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다. 경험하거나 목격한 충격적인 사건이 인간에 의한 것일 때 트라우마는 더욱 강하고 오래도록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태안화력처럼 사망사고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해 왔던 현장은 그 자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하지만 임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노동자들은 그 현장을 떠날 수 없다. 또한 지시와 명령에 의해 위험천만해 보이는 일들을 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동료의 처참한 죽음은 곧 나의 미래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 예방과 치유의 핵심은 ‘안전 확보’에서 시작된다!

외상사건을 경험한 사람 모두가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고, 그 시기를 특정할 수도 없으며, 너무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외상사건 이후의 위기개입이 중요하다.

피해·생존자들의 위기반응 정도를 파악하고 트라우마를 예방하는 조치들이 위기개입 과정에서 이뤄진다. 이 위기개입 과정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취해져야 할 제1의 원칙은 “안전 확보”다. 안전을 확립으로 피해·생존자들을 보호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안전 확보라는 것이 비단 일시적인 작업중지나 휴업·휴가를 뜻하지 않는다. 당장 경험한 외상사건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넘어 생존자들이 다시 일상에 복귀했을 때 다시는 그와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 않는 것까지가 안전 확보다. 예를 들어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위기개입 활동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고, 국가가 사과하며, 정규직이 돼도 현장에 복귀할 때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 계속된다면,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는다.

안전한 환경에서 활동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안전한 환경이 구축됐다면, 그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된다. 우선, 피해·생존자들이 경험한 사건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앞서 태안화력 고 김용균 님의 죽음은 국가에 의한 타살이라 이야기한 것은 이 맥락에 있다. 동료의 죽음을 경험한 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정서는 “죄책감”이다.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술에 의존하며 하루를 넘긴다. 지금도 집회 현장에서 동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미안하다’다. 이런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이름 붙이기’다. 엄연한 타살이며, 가해자는 국가이고, 노동자 당신들 잘못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어야 한다.

두 번째 활동은 “말하기”다. 생존자가 그 간에 겪었던 일들을, 지금 자신의 마음을, 이런 상황을 만든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스스로 말할 연단을 열어야 한다. 산업현장의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는 이윤을 쫓는 자본과 그 자본을 옹호하는 국가에 의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사건 발생 직후 하는 일은 은폐와 축소이고 입을 닫게 하고 증언 못하도록 가로막는 일이다. 그것은 트라우마가 생존자들을 집어 삼키도록 만든다. 따라서 생존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안전하고 당당하게 말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 내 가동 중인 스태커 근처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 태안화력발전소 저탄장 내 가동 중인 스태커 근처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세 번째는 생존자들에게 통제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외상 사건에서 피해·생존자들이 느끼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통제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고, 도피할 자유가 없는 것에서부터 일어난다. 내 생명이 위협 받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가 위험천만한 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누구든 그것을 거부하고 하던 일을 멈출 권리, 그것이 통제권이며 이를 생존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으로 가는 열쇠다.

그리고 목격자이자 증언을 듣는 수많은 시민들이 해야 할 역할도 있다. 생존자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고, 함께 분노하고, 안전을 확보하고 통제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함께 외치는 것, 이것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의도한 상황으로 일어난 이 사건에서 중립은 없다. 이런 우리들의 태도 역시 생존자들이 안전함을 느낄 중요한 대목이다. 이 모든 과정이 계속되는 죽음을 방치하는 환경적 구조를 바꾸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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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01-26 17:22:25
과연 국가 탓만 있을까?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는다. 국가는 투표로 국민이 만든다. 결국, 정치에 무관심하면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 관한 꾸준한 관심과 투표만이 약자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