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5월 ‘피해와 관련이 없다’고 판정했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지난달 뒤늦게 지원 대상에 포함됐지만 결국 숨졌다.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판정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개정된 기준도 까다롭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는 1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조아무개(55)씨가 지난 15일 숨졌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1997년 둘째 아이를 낳고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 뒤 2009년 희귀난치성질환 ‘특발성 폐섬유화증’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에 걸리면 폐 염증과 함께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다. 병세가 진행될수록 호흡곤란과 마른기침이 심해진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언론에 불거지자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지하고 2016년 7월 피해를 신고했다.

정부는 2년이 지난 2018년에야 판정을 내렸다. 조씨 증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이 없다’(4단계)고 했다. 조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말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조씨도 뒤늦게 ‘특별구제계정’ 대상자로 인정됐지만 때는 늦었다. 그는 지난해 9월 폐 이식 수술을 받은 뒤 병세가 나빠졌다. 조씨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숨졌다.

▲ 최근 폐 이식 수술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안은주씨가 지난 17일 또다른 피해자 고 조아무개씨의 발인 차량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예용 사회적참사특조위 부위원장 제공
▲ 최근 폐 이식 수술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안은주씨가 지난 17일 또다른 피해자 고 조아무개씨의 발인 차량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예용 사회적참사특조위 부위원장 제공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이 뒤늦은 데다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참사 특조위 김춘효 홍보팀장은 “조씨는 가습기살균제를 쓴 후 계속 병세가 악화했지만, 정부는 피해를 인정하는 데 2년이 걸렸다. 그 때문에 조씨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김 홍보팀장은 “폐와 기관지 외 인체 다른 부위에 미치는 영향은 인정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사회적참사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봤다. 고인 어머니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폐 섬유화로 숨진 사실이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불거지기 전인 2008년이다.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이번에 면담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 가습기살균제와 관련성을 인지하지 못한 피해자가 많다고 추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까지 공식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는 1375명이다. 신고된 피해자는 624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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