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청와대 지시로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박근혜씨와 정부정책 홍보영상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영상 실무를 담당한 독립(외주)제작사에 ‘갑질’한 사실이 드러난 지 3주 가까이 흘렀지만 EBS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BS는 왜 침묵하는 걸까.

[관련기사 : EBS, 청와대 지시받아 박근혜 홍보영상 찍었나]

[관련기사 : 청와대 홍보영상 만든 EBS 수상한 계약]

일단 현재 EBS 사장이 공석인 것도 한 원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6일 EBS 사장을 재공모하겠다고 밝히며 연임에 실패하게 된 장해랑 사장이 물러났다. 방통위는 지난 27일부터 EBS 사장 재공모를 시작했는데 임명까지는 5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EBS 노조가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지만 이를 수용할 컨트롤 타워가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이유는 EBS가 답하기 곤란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EBS는 2년 전 언론에 이 문제의 일부를 지적받았고, 지난해 말 추혜선 정의당 의원 질의, 올 초 감사원 질의를 받았다. EBS는 이들 질의에 형식적으로 답변을 했고, 특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청와대 관련 부분은 답하지 않았다.

▲ ebs 로고
▲ ebs 로고

헤럴드경제는 지난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 ‘창조경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EBS 등에 광고(홍보영상)를 강요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가 공개한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문건을 보면 미래부가 발주한 ‘창조경제’ 광고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직접 추진했다. 또한 ‘드림인’이란 제목으로 90초짜리 홍보영상 4편을 20회 방송하는 조건으로 미래부가 2200만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박근혜 홍보영상 관련 일부 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이에 당시 미래부는 헤럴드경제에 “EBS에 광고(홍보영상)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EBS는 이 매체에 “청와대 관련 내용은 듣지 못했다”며 청와대 홍보수석실 개입을 사실상 부인했다.

미디어오늘 취재결과를 보면 홍보영상을 주도한 건 청와대 홍보수석실이었으니 미래부의 해명은 사실에 가깝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EBS의 해명은 거짓이다.

이후 EBS는 논란이 될 부분을 아예 답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청와대 행정관에게 승인을 받으며 박근혜씨 홍보영상을 실제 만든 제작사 대표는 지난해 11월경 추혜선 의원에게 ‘EBS가 청와대 지시로 홍보영상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 갑질이 있었다’는 내용을 제보했다.

▲ 지난해 12월 EBS가 추혜선 정의당 의원에게 보낸 답변
▲ 지난해 12월 EBS가 추혜선 정의당 의원에게 보낸 답변

EBS가 지난해 12월 추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을 보면 청와대 관련 내용은 찾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EBS가 제대로 협찬계약을 맺고 영상을 만들어 EBS에 방영했다는 내용 뿐이다.

EBS는 2015년에 미래부 등 5개 부처와 계약을 맺었는데 각 부처당 입찰이 필요 없도록 수의계약 한도 2000만원으로 계약을 맺어 청와대 홍보영상 사업을 지원했다. EBS-제작사-청와대 행정관 등이 주고받은 메일을 종합하면 당시 정부부처에선 향후 감사에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홍보영상에 자신들 부처 로고나 부처 관련 내용을 영상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2016년엔 일괄 문체부가 EBS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실무는 여전히 청와대와 제작사가 진행했다.

EBS가 추 의원에게 보낸 답변을 보면 문제가 될 만한 2015년 자료를 빼고 2016년 자료만 첨부했다. 

감사원 질의에서도 역시 EBS는 청와대 관련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월 제작사 대표는 해당 내용을 청와대에 진정을 넣자 감사원이 EBS에 이를 질의했다. 감사원가 받은 답변을 보면 EBS는 제작사에 계약서나 선급금 없이 일을 맡긴 것, 실제는 외주용역을 줬지만 계약은 EBS 자체제작처럼 체결해 제작사 측에 허위로 제작인원을 올리게 한 뒤 제작비를 우회지급하게 한 것 등에 대해서만 해명했다.

최근 EBS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당시 사건을 조사한 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3일 “지금부터라도 EBS 구성원은 이번 사안의 진상을 낱낱이 조사하고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EBS가 또 다시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지부장 유규오)는 지난 27일 “EBS 박근혜 홍보 방송의 진상 조사를 촉구한다”는 성명에서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희망나눔 캠페인-드림인’ 프로그램 감사를 정식 요구한다”고 했다.

이제 EBS가 입장을 낼 차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