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민주주의는 언제쯤
재정민주주의는 언제쯤
[미디어오늘 1174호 사설]

470조원의 2019년 나라 살림을 놓고 여야가 예산전쟁에 들어갔다. 그 중에서도 일자리 예산 23조원을 놓고 여야가 초반부터 격돌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보다 4조원만 증액해 과하지 않다고 했고, 한국당은 최소 8조원은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은 연말만 되면 반짝 국가예산에 관심을 가질 뿐 1년 내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한국의 국가재정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망령에 빠져 있다. 많은 나라에서 재정권력은 국왕에서 의회로, 의회에서 국민으로 옮겨갔지만 우리는 국왕에서 조선총독부로, 총독부에서 정부 관료로 옮겨갔을 뿐이다. 국회의 예산 통제권도 허울 뿐이다.

헌법부터가 문제다. 우리 헌법은 예산의 국회 의결주의를 규정했지만 54~58조에서 의회 동의없이 행정부가 맘대로 쓸 수 있는 준예산제도와 함께 정부 동의 없인 국회의 예산 수정도 금지한다.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국민 부담이 되는 조세(세입)는 법으로 강제하면서도 예산(세출)은 법이 아닌 그냥 ‘예산’일 뿐이다. 국민에겐 납세자의 의무만 있지 납세자의 권리는 없다. 헌법 76조엔 재정의결주의의 예외도 광범위하게 허용한다. 대통령에게 긴급재정 경제명령권과 긴급재정 경체처분권을 준 것이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은 법이 아닌 의결일 뿐이라 헌법소원의 대상도 안 된다.

서구의 근대 혁명은 모두 국가 재정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1628년 권리청원 때 영국 의회의 가장 큰 관심은 국왕의 전횡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도 재정 파산이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아직도 상설위원회가 아닌 현실을 놓고 보면 우리는 아직도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 이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 지난 11월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이 국무위원들의 답변 태도와 야당의원들의 질의 태도에 대해 서로 지적하며 설전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장제원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 연합뉴스
▲ 지난 11월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이 국무위원들의 답변 태도와 야당의원들의 질의 태도에 대해 서로 지적하며 설전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장제원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 연합뉴스
우리 예결산 제도는 메이지 헌법과 독일 프로이센 헌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메이지유신을 이끈 이토 히로부미는 1882~1883년 유럽방문단을 이끌고 독일로 가 베를린대학에서 그나이스트 교수에게 헌법과 국가운영 전반을 사사했다. 예전에 그나이스트는 자유주의자로 비스마르크 정권과 대립했지만 1880년대초에 변절해 제국의 옹호자로 전락해 있었다. 그나이스트는 이토에게 “외교, 군사, 경제 조항은 결코 의회가 간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토는 가르침대로 의회가 예산을 의결하지 않아도 집행할 방법인 ‘무예산 시행이나 전년도 예산 시행, 준예산제도’를 일본에 심었다. 우리 헌법은 이토가 만든 헌법을 답습했다.

참여정부의 종부세를 ‘세금폭탄’으로 몰아갈 때 작가 복거일이 월간조선 2006년 6월호에 ‘세금이 징벌 수단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독일의 법률가 그나이스트는 누진세 도입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며 이 변절한 학자를 인용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도 전후 헌법에선 재정조항을 개혁해 메이지헌법의 잔재를 씻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아직도 54조 준예산제, 55조 계속비와 예비비, 57조 국회의 예산추가나 삭제금지 등으로 메이지헌법의 독소조항을 갖고 있다.

연말만 되면 여야가 예산을 놓고 격돌하는 사이 선출되지 않은 재정권력인 모피아들은 뒤에서 웃고 있다. 재정민주주의의 첫걸음은 행정부의 손아귀에 쥐어진 감사원의 온전한 독립부터다. 감사원이 가진 예산감사권은 의회로 가져와야 한다.

2008년 5월13일 임기를 1년2개월이나 남긴 감사원장의 미심쩍은 사퇴 직후 국세청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터뜨렸다. 감사원은 공영방송 KBS를 특별감사해 정연주 사장을 검찰에 고발해 끝내 밀어냈다. 1년 뒤 정 전 사장은 무죄를 받았지만 상황이 종료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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