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봄’은 그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91년 봄’은 그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리뷰] 영화 ‘1991, 봄’, 유서대필조작 피해자 강기훈 중심 1991년 분신정국 희생된 11명과 남은 이들 다뤄

1987년 국민은 새로운 권력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부패한 권력을 내리는데 까지만 힘을 모았다. 직선제를 수용하겠다는 6·29선언은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전두환·노태우 측은 김영삼의 라이벌 김대중을 사면복권시켜 이들과 함께 새 헌법을 만들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 말고는 후퇴한 조항들이 새 헌법에 포함되기도 했다.

1987년 7월9일 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문익환 목사의 연설은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해 “이한열 열사여”로 끝난다. 하지만 6월 항쟁 직후 권력은 희생의 의미와 원인을 짚지 않았다. 1990년 125석이던 여당(민주정의당)에 유신 2인자와 민주화 일부 세력까지 투신해 218석짜리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유사군사독재’가 시작했다.

죽음이 이어졌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서울시경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숨졌다. 재야단체는 범국민대책회의를 만들고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정부·여당은 이런 목소리를 외면했다. 소위 ‘분신정국’이 뒤따랐다. “왜 사람들은 죽은 사람보다 죽인 사람 편을 들까”는 말을 남긴 전남대생 박승희가 같은달 29일 분신했다.

▲ 1991년 봄 희생된 사람들. 사진=영화 '1991, 봄' 한장면
▲ 1991년 봄 희생된 사람들. 사진=영화 '1991, 봄' 한장면

5월1일 안동대 김영균, 5월3일 경원대 천세용, 5월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5월10일 서울직장민주화청년연합 회원 윤용하, 5월18일 식당 노동자 이정순과 보성고 김철수, 5월22일 건설노동자 정상순이 투신 또는 분신했다. 5월6일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사했고, 5월25일 성균관대 김귀정은 백골단 ‘토끼몰이’에 압사당했다.

영화 ‘1991, 봄’(감독 권경원)은 이 11명의 죽음을 지켜본 지인들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강기훈을 조명한다. 당시 검찰은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며 자살방조·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강기훈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기훈은 3년을 꼬박 감옥에서 보냈다. 

(관련기사=혁명 위해 친구의 죽음을 이용했던 남자)

이 과정에서 언론은 민중에 뿌리박지 않은 채 대세에 흔들렸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파헤치고 6월 항쟁의 주역으로 그려진 신문들도 7월부터 분위기를 바꿨다. “노사분규급증…생산활동위축”은 7월30일 노동자대투쟁을 다룬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이었다.

강경대가 죽고 경찰이 수세에 몰리자 다시 신문들은 1면에 정부규탄 목소리를 배치했다. 그럼에도 본색을 감출 순 없었다. 조선일보는 5월5일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며 “자살이 전염한다”는 내용의 김지하 칼럼을 1면에 배치했다. 박홍 서강대 총장이 분신의 배후세력이 있다고 주장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5월10일 사설에서 받아 “교육자다운 용기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운동권은 동료의 목숨까지 악용하는 집단이 돼있었다. 강기훈은 2015년에서야 대법에서 무죄를 받았다.

1991년 봄은 그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80년 5월이나 87년 6월처럼 우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강기훈은 재심 최후진술에서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추억에서나 존재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 야만의 시간은 잊지 말되 지금 남아서 사는 우리의 삶도 누리자”(송소연 진실의힘 이사)는 말처럼 영화는 91년 봄에 떠난 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현재를 조명한다.

▲ 유서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 사진=영화 '1991, 봄' 한장면
▲ 유서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 사진=영화 '1991, 봄' 한장면

영화는 강기훈이 기타를 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연주 8곡으로 영화의 흐름을 설명할 뿐 그의 말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조화가 어려워 관현악에 사용될 수 없는 기타처럼 외롭게 살았다. 권경원 감독은 “강기훈씨는 석방된 이후 매년 5월마다 이 사건을 이야기해왔다”며 “그 중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고립의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는 지난 2016년 ‘강기훈 말고 강기타’라는 제목의 스토리펀딩으로 1300여명의 후원으로 완성됐다. 목표액의 4배 이상을 달성하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1991, 봄’은 오는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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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2018-10-24 12:35:53
미디어오늘에 건의를 해보자면 문화 관련 기사들이 좀 있었으면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긴장하면서 살 수는 없는데
(이 사이트에 들어오면 무겁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기사들뿐;;;)

https://www.youtube.com/watch?v=euTti9by-08
[Fryderyk Chopin - Prelude Op. 28, n° 2 ]

*
https://news.v.daum.net/v/20071011144013059
김석의 영화읽기(?) 이런 형식도 괜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