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통일운동가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
[부고] 통일운동가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
소파, 용산기지, 대추리, 매향리, 제주 강정, 사드까지 30년 통일운동 한길…항암 투병중 운명

서울대를 나와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으로 2001년 소파개정 반대, 용산미군기지 이전, 대추리, 매향리, 키 리졸브, 제주 강정, 사드배치 싸움까지 30년을 쉼없이 달려온 김판태 군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대표가 14일 항암 투병 중 악화돼 숨졌다.

고인은 지난해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30년 동안 쉼없는 활동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암을 불러왔다. 고인은 두 달전 수술을 마치고 제주 평화쉼터에서 요양키로 했으나 14일 오전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운명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문규현 신부 등 5명의 공동장례위원장을 중심으로 장례 일정을 논의중이다. 장례위원회는 15일 저녁 7시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2층 천실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열고, 발인은 16일 오전에 하기로 했다. 하관식은 16일 오후 4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다. 

▲ 김판태 대표가 키 리졸브 훈련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참세상 제공
▲ 김판태 대표(왼쪽)가 2009년 3월 한 기자회견에서 키 리졸브 훈련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참세상

김판태 군산 평통사 대표는 1965년생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중퇴하고 1989년 인천에서 신창정기 노조간부를 맡아 민주노조 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고 석방 뒤엔 인천 남동공단 노조연대회의 사무차장을 맡았다. 1995년엔 민족사랑 청년노동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가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됐다.

김판태 대표는 2001년 2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SOFA) 개정안에 반대하는 ‘SOFA 국민행동’ 사무국장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회의실에서 법안의 비준동의에 반발, 면도칼로 할복하기도 했다.

다음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소파개정안을 통과시켜 민간단체들의 수년간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27명의 개정안 반대 표결한 김원웅 의원은 “개정안이 한미 양국의 호혜성과 평등성에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권회복 차원에서 봤을 때에도 문제가 있는 비준안”이라고 반대 표결의 이유를 설명했다.

▲ 김판태 대표가 2004년 4월15일 성남공항에서 딕 체니 부통령 방한 반대 기자회견 도중 마이크를 잡았다. 사진=통일뉴스 제공
▲ 김판태 대표가 2004년 4월15일 성남공항에서 딕 체니 부통령 방한 반대 기자회견 도중 마이크를 잡았다. 사진=통일뉴스

김 대표가 활동하는 평통사의 통일운동에 불만이던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2012년 2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통일운동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사무실과 주요 간부의 집과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김종일 평통사 현장팀장의 숙소 등 8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대적 수사에 나서 관계자들을 잇달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이때 김 대표도 각종 집회와 언론 기고를 통해 키 리졸브,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군사연습 반대, 미국의 대북정책 폐기, 미군 철수,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천안함 진실 은폐 등을 주장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기자회견이나 활동이 이적 동조에 해당하고 보관한 문서나 자료집이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 김 대표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해 1,2심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연말 검찰의 상고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1심 재판부는 “평통사가 북한에 동조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 볼 수 없으며 이들이 한 행위 또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당시 평통사 관계자 9명이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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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2018-10-14 23:25:1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람 2018-10-14 16:56:3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