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달 30일 장관급 인사 5인과 함께 차관급 4인 인사를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언론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눈에 띠는 인사가 있었다. 방위사업청장 임명이다. 문화재청장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외부 인사가 왔다면 방위사업청장에는 왕정홍 현직 감사원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감사원 사무총장 자리가 차관급이라 같은 차관급으로 옮긴 것이다.

청와대는 왜 방위사업청장에 현직 감사원 사무총장을 임명했을까. 이유를 후임 감사원 사무총장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감사원 사무총장은 1000여명의 직원을 둔 감사원 내부 살림을 맡고 있는 등 감사원의 예산 배분과 인사에 관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실세로 통한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후임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를 염두에 두고 현직 사무총장을 방위사업청장에 임명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감사원은 청와대 개각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31일 신임 사무총장에 김종호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김종호 비서관을 사무총장으로 임명제청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이지만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라서 인사를 놓고 두 기관 사이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청와대에서 직전까지 근무했던 인물이 감사원 신임 사무총장에 임명된 것이다.

청와대 입김이 통할 인물이 감사원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는 뜨거운 감자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 이완수 사무총장 임명 논란이 있었다. 이완수 전 사무총장은 박근혜 주요정부 인사와 관계를 맺어 특정인사의 추천을 받고 청와대 하명에 따라 자리에 올랐다는 의혹이 나왔다. 특히 이 사무총장은 16년 만에 외부출신 임명이라서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이 사무총장이 2007년 삼성특검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변호했던 인물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과 국정원 기조실장 사이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고, 삼성서울병원 감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감사원은 이완수 사무총장이 2007년 이후 삼성과 인연이 없고 메르스 감사와 관련해서도 삼성서울병원에 적정한 제재조치를 취했다면서 삼성이 사무총장 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처럼 추측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번 신임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는 이완수 사무총장 때처럼 불거지지 않았지만 언제든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제청권한을 행사해 김종호 비서관을 추천했더라도 청와대 현직인사 추천은 정권과 교감했다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김종호 비서관이 원래 감사원 출신이라서 청와대 입김과 무관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 비서관은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4년 뒤 1998년 감사원으로 전입, 주요 보직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감사원은 김종호 비서관의 사무총장 임명을 환영한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인사지만 원래 ‘감사원맨’이이라 내부를 잘 알고,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감사원 역할에 부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올해 1월 취임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공무원들이 능동적으로 소신껏 일할 환경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업무수행 과정상 발생한 과오에 대해 면책시키고 감사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며 기존 감사원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 감사원 내부는 수장의 방침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피감사 기관에 압박을 주지 않으려고 사무소에 상주하지 않는 것도 큰 변화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다른 한편으론 감찰활동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정원의 기관운영 감사와 함께 지방선거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공직비리 감찰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 감사원장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았던 인물을 임명제청한 것도 정부기관의 직무를 벗어난 행위나 공무원 비리를 엄단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분석이다.

▲ 김종호 감사원 신임 사무총장. 사진=감사원 페이스북.
▲ 김종호 감사원 신임 사무총장. 사진=감사원 페이스북.

감사원 관계자는 “최재형 원장이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성격으로 조직과 소통하고 있다면, 김종호 비서관은 감사원 내부에서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인사로 통한다. 겉으로만 보면 김 비서관이 청와대에서 내려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양날의 칼날과도 같다”며 “지금은 논란이 없지만 향후 정권에 영향을 끼치는 감사 이슈가 생겼을 때 어떤 결정을 하는지가 신임 사무총장 인사를 평가하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아무리 감사원 사무총장이 실세라도 방향을 결정하는 감사원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 최재형 감사원장의 향후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자칫 청와대 입김으로 볼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가 언젠가 논란의 도화선이 될지, 아니면 합리적인 인사로 평가될지 최재형 감사원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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