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은산분리에 입장을 바꾼 것일까.

청와대는 8일 문 대통령의 후보시절 언론과 인터뷰, 공약집, 국정과제, 신년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과 내용을 제시했다.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과 배치된 게 아니고 은산분리 원칙 역시 변한 게 아니라고 적극 주장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4월10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은산분리 대원칙을 지키되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할 여러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약집에는 “인터넷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환경 조성”이라고 밝혔고, 국정과제에선 “인터넷전문은행 등 인터넷, 모바일 기반 금융서비스 영역 확대”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문 대통령은 “다양한 금융산업 발전하도록 진입규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런 과거 발언과 내용을 볼 때 전날 현장 방문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말을 바꾼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현장방문에서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하여 혁신 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혁신기술과 자본을 가진 IT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 참여는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과 비교해 얼핏 보면 문 대통령은 크게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약집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라는 말은 인터넷전문은행 참여조건으로 은산분리법을 내걸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공약집을 보면 분명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라고 했기 때문에 은산분리 법 개정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었다면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제시한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입장 이외에 좀 더 자세하게 입장을 밝힌 언론 인터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4월 25일 디지털타임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은 산업자본의 소유지분을 제한한 현행법 하에서 인가를 신청했다”며 “특정기업을 위해 법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디지털타임스는 문 대통령의 답변에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시중은행 등 금융산업 전반에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현행법 안에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법 제도 개편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여지를 열어놨다고 디지털타임스는 보도했다.

▲ 문재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

인터넷전문은행이 ‘핀테크’와 결합한 혁신산업이기 성장시키기 위해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과거 발언과 미묘하게 갈린다.

문 대통령은 전날 “인터넷전문은행은 핀테크산업의 개척자이다. 금융과 ICT가 결합된 핀테크는 그 결합의 폭과 깊이를 더욱 확장하면서 금융생활과 금융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이 핀테크 생태계의 구심점으로서 성장과 혁신을 지속할 때, 핀테크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 소규모 핀테크기업은 인터넷전문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성장기회를 얻을 수 있고, 인터넷전문은행은 자체 서비스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연합 대표를 맡을 당시 2015년 2월 국회 본관 당대표실에서 경제지 합동 간담회를 갖고 핀테크 산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금산분리 기준이 핀테크 산업에 뛰어드는 중소벤처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묘안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우선 핀테크산업이 금융산업이냐 아니냐부터 (개념)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황이다. 기존 산업구조 속에 없다고 하니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더 논의해야 한다”며 “금산분리라는 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까지 겸하면서 독점과 경제 집중을 막기 위한 것인데 (핀테크와 같이) 새로운 산업분야에 대해선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참여 대상으로 밝힌 “혁신기술과 자본을 가진 IT기업”의 범위를 어디로까지 볼 수 있느냐의 문제도 논란이다. 은행을 운영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춘 기업은 사실상 재벌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하려는 IT혁신 기업이라는 게 대기업의 은산분리규제 완화로 연결돼 볼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 참여 대상 범위에 대해 “범위를 정해놓고 밝혀버리면 논란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에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나중에 삼성과 SK를 넣어줘야 할 상황이 된다고 했을 때 미리 대기업 재벌은 참여 대상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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