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아베가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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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일본 우익에게 공격 받기도

※ 영화 ‘어느 가족’ 세부 내용이 있습니다.

만비키 가족

사법제도는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 부자는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 법은 사실상 가난한 사람을 잡기 위한 법이다. 영화 ‘어느 가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물건을 훔쳐가며 사는 이들의 이야기다.

삶의 맥락을 읽지 못하기도 한다. 집에서 학대받던 어린아이 유리(사사키 미유 분)가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은 존중받을 만한 삶의 결단이다. 허나 부모의 동의가 없었으니 어른들은 유괴범이 된다.

구조의 문제를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혼자 살던 할머니와 공동체를 이뤄 살던 이들이 시신유기범이 되기도 한다. 노부요 시바타(안도 사쿠라 분)의 대사처럼 이들은 할머니 하츠에 시바타(키키 키린 분)의 시신을 버린 게 아니라 버려진 걸 주웠을 뿐이다. 사회가 버리고 모두가 방치했지만 범인 하나 잡아 감옥에 가둬 문제를 해결한다.

▲ 영화 '어느 가족'
▲ 영화 '어느 가족'

영화 ‘어느 가족’의 일본판 원제는 ‘만비키 가족(좀도둑 가족)’이다. 일본 원제가 절도에 초점을 두면서 한 사회가, 사법제도, 다수의 편견이 이 가족을 얼마나 편협한 잣대로 재단하는지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보통 가족을 혈연과 결혼제도로 이어진 모임이라고 하니 사실 이들에겐 가족보단 ‘식구(食口)’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느 가족

일본 원제 ‘만비키 가족’이 한국판 제목 ‘어느 가족’에 비해 더 영화를 잘 설명했다는 평이 다수다. 이 식구들의 다양한 모습 중 ‘만키비(좀도둑)’을 강조했으니 구체적이라곤 할 수 있다. 이들을 가족으로 봐야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만큼 ‘어느 가족’이 영화 전체의 문제의식을 포괄한다.

이 식구들은 전통 가족과 대비된다. 흔히 가족을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능력이 부족해도 책임져야 하고, 그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푸는 부작용도 벌어진다.

영화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식구들이 유리에게 새 옷을 마련해주기 위해(훔치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갔다. 갑자기 유리가 ‘새 옷을 사도 자신을 때리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유리를 낳은 엄마는 새 옷을 사주면서 유리를 학대했다. 반면에 노부요는 유리가 입고 왔던, 엄마가 사준 옷을 불태워줬다. 그러면서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유리를 꼭 안아준다.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어느 가족’은 가족이다.

▲ 영화 '어느 가족' 한 장면. 노부요 시바타가 유리를 꼭 안아주는 장면.
▲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노부요 시바타가 유리를 꼭 안아주는 장면.

하지만 이들의 정체가 들통 나자 정부는 유리를 엄마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실종(?)됐던 유리를 찾은 엄마에게 기자들은 고작 ‘유리에게 음식을 직접 해줬는지’를 묻는다. 천륜이 아이의 선택보다 우선한다. 전통 가족이란 개념이 얼마나 허망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들 탓일까. 이 영화는 일본 내부에서 비난을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만비키 가족’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아베 일본 총리가 유사한 다른 사례와 달리 고레에다 감독에게 축하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베의 지지세력 중 하나인 우익단체 ‘일본회의’는 대가족 중심의 가족을 높이 평가하고 여성의 역할을 가사와 육아로 제한하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 아베가 회장을 맡은 ‘부모학 추진 의원연맹’도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서도 자신의 영화가 어떤 걸 고발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가족’은 전통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

▲ 영화 '어느 가족' 한 장면.
▲ 영화 '어느 가족' 한 장면.

여기서 노부요의 역할이 크다. 보통 사람들은 애정을 느낄 때 가족의 이미지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나이든 여자를 친근하게 부를 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오사무 시바타(릴리 프랭키 분)도 쇼타 시바타(죠 카이리 분)에게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아빠로 부를 것을 요구하지만 노부요는 그런 말이 중요하진 않다고 한다. 하지만 유리의 상처에 가장 가슴아파하며 유리를 위로한다.

노부요는 ‘어느 가족’에서 성별·나이로 볼 때 엄마의 위치에 있다. 전통 가족이라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노부요는 자신이 감옥에 갇히자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쇼타와 ‘가족’이고 싶었던 오사무가 화들짝 놀랐다. 노부요는 “우리에겐 역부족”이라고 선을 긋는다. 자신의 능력과 책임을 말할 수 있는 관계, 전통가족에선 찾기 힘든 정직한 모습이다.

영화 ‘어느 가족’은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에 답답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아역 캐릭터를 비중있게 잘 살리는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장점과 고레에다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배우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린을 다시 보는 즐거움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유쾌하다. 영화 ‘어느 가족’은 일본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10일 만에 8만4000여 관객(8월4일 기준)을 모으며 흥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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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8-08-05 19:00:58
법은 절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음.

고고 2018-08-05 15:11:35
일본회의는 전범권력자들의 세습권력을 유지시키고, 제국주의국가로의 회귀를 준비하는 일본의 극우집단. 겉으로는 '가족'중심의 가부장주의를 부르짖지만, 그 속내는 천황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기 위함이다.(천황=아버지) 일본회의(일본 권력층들)가 말하는 '가족'과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가족'은 다른 개념이다. 그 개념의 차이를 보지못하고 가족의 '다양성'이라는 특수개념을 가족의 '해체'에 대한 긍정성으로 곡해할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가족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소중한 이들이 아닌가. 기계적 법리주의도 아니고, 가족주의도 아닌 그저 가족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불쌍한 이들이 존재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