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협상 중인 한국전력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하자 조중동과 경제지들이 연일 탈원전 탓이라며 정책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영국 정부가 본격 협상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알고 있었다며 이번 협상결과를 탈원전 정책 과 연결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31일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 뉴젠(Nugen)사의 모회사(지분 100%)인 도시바가 새 사업모델 검토 등으로 지연됨에 따라 같은달 25일 한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해지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조중동은 이 같은 통보 이유를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중동은 영국 가디언의 지난달 29일(현지시각)자 뉴스를 근거로 들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등은 8월1일자 보도에 가디언 기사를 인용했다. 가디언은 29일자 온라인판 ‘Fate of new Moorside nuclear power station in Cumbria in doubt’(불확실해진 무어사이드 핵발전소의 운명) 제하 기사에서 “(원전수주) 거래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한국 정부의 교체와 한전의 새 사장 임명에 의해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The transaction has still not closed, and uncertainty has been created by a change of government in Seoul and the appointment of a new Kepco chief executive.)

이 문장을 두고 조선일보는 1일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본격화 및 한전 사장 교체 등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졌다”고 썼다. 조선은 2일자 사설에도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2일자 사설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계산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에게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라며 “무어사이드 원전은 사업자가 30년 넘게 운영하게 된다. 자국에서 원전 폐쇄하면서 남의 나라 원전 30년 유지·보수해준다는 약속을 믿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썼다.

특히 조선은 “세상에 자기 나라에선 위험하니까 만들지 말라고 한 물건을 다른 나라에는 팔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즈니스를 떠나 윤리의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원전을 놓고 하는 일이 딱 그렇다”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2일자 사설 ‘제동 걸린 영국 원전 수출, 탈원전의 저주 아닌가’에서 “자국에서는 원전을 더는 짓지 않겠다면서 외국에 원전을 수출한다는 건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보일 수 있다”며 “원전을 지으면 30년 정도는 가동해야 한다.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전문 인력이 있을 턱이 없고,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버틸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의 담당 실무책임자인 산업자원부 김진 원전수출진흥과장은 1980년 이후 자국에 원전을 짓지 않은 미국도 인도, 사우디 등에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과장은 “프랑스도 자국에서 원전을 감축하면서도 유럽 뿐 아니라 아시아 중동 등 해외 원전사업에 달려들고 있다. (조선, 중앙의) 논리대로면 어느 나라도 미국과 프랑스에 원전 건설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29일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 관련기사. 사진=가디언 홈페이지 갈무리
▲ 지난달 29일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 관련기사. 사진=가디언 홈페이지 갈무리

동아일보는 1일자 기사에서 “원전 수출 협상이 결렬되면 한국 원전업계는 안에서는 탈원전 논란이 심해지고 밖으로는 ‘수출 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고 썼다. 

파이낸셜뉴스는 1일자 기사에서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가 최종적으로 좌초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역시 압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탈원전 정책의 원전 수출에 지장을 준 것이란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보도에 정부는 사실에 맞지 않는 추측이라고 반박했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국장)은 2일 “지난 6개월 간 협상하면서 영국 측이 에너지 전환 정책(탈원전정책)에 따른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영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며 “아무 질문도, 생각도 없는 데 무슨 탈원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냐. 그런 추측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진 과장은 2일 “현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했고, 도시바가 한국전력에 뉴젠 인수의향을 묻고자 접촉을 시작한 것도 같은 5월이었다. 이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게 12월이었다. 에너지 정책이 불편했다면 한전 아닌 다른 나라도 후보군에 있었는데, 한국이나 한전을 선택했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과장은 “우선협상대장자가 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한·영간 국장급 실무논의가 시작돼 지금까지 5차례 했다. 12월 1차 회의부터 지금까지 영국은 탈원전 정책이나 에너지정책 문의 또는 평가 요청이나 우려를 표명한 적이 없었다. 언급조차 없었다. 조금이나마 불편한 이슈였다면 말 한마디라도 했을텐데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가디언 보도를 두고 김 과장은 “가디언 보도 역시 추측성 보도이며 (정부출범이나 한전 사장 취임과 협상에 대한) 시기도 맞지 않는다”며 “우리 언론은 탈원전 정책으로 해석해서 쓴 것 아니겠느냐. (가디언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시기와 현 정부 정권교체를 그 원인이라고 썼다해도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가디언의 보도에 탈원전이라는 표현은 없다.

영국 원전 수출이 실패하면 국내 중소업계가 타격을 입는다는 주장에 김진 과장은 “원전 수출을 영국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와 체코에도 시도 중이고, 영국에도 무어사이드 외에 다른 곳에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 협상 난항이 근본적으로 22조원 가까운 돈을 선투자했다가 후수익을 보는 구조 자체가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애초 한전은 도시바의 뉴젠 지분 인수 비용과 무어사이드 원전 플랜트 건설 비용을 모두 독자 부담한 뒤 향후 건설된 원전을 통해 나오는 전기요금 수익으로 투자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됐다. 그러나 지난 6월 영국 정부가 RAB 방식, 즉 건설 기간에도 정부가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대신, 향후 한전이 가져갈 수익은 일부 제한하는 모델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진 과장은 “수익성 확보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책변화를 따져볼 시간이 있어야 했다. 협상 8개월 동안 지연된 것은 수익모델이 바뀐 것이 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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