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2회씩 ‘각하’를 보고 있다. 1년간 있었던 정치팀에서도 해보지 못한 마크맨 노릇을 사회팀에 와서야 하는 것 같다. 물론 사회팀 소속이니 내가 만나는 그는 전직 대통령 이명박이 아니라 피고인 이명박이다. 수인번호 703, 이명박 피고인은 다스 비자금 조성, 삼성 뇌물 수수, 국정원 자금 상납 등 16가지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5월23일 시작된 공판은 16차(7월27일 기준)까지 진행됐다. MB 법정중계 전담으로 매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23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23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법정은 썰렁하다. MB 재판은 전직 대통령 사건인 만큼 서울중앙지법에서 제일 큰 417호를 사용하는데 150여 석 방청석에 겨우 20명 남짓이 앉아있을 뿐이다. MB 재판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과 교회 교우들이다. 이명박 피고인의 세 딸인 주연, 승연, 수연씨가 번갈아 가면서 맨 앞줄에서 재판을 방청한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도 자주 얼굴을 비춘다. 법정을 나갈 때마다 이명박 피고인은 꼭 방청석 가까이 다가가 재판에 와준 이들을 챙긴다. 악수를 하기도 하고 짧은 담소를 나눌 때도 있다. 즐겨하는 말은 “식사 잘하세요”와 “기도하세요”이다.

취재 열기도 시들하다. MB 재판에는 증인이 없다. 이명박 피고인 측은 검찰이 증거로 신청한 참고인 진술조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을 모두 동의했다. 이 경우 해당 진술자를 법정으로 부를 필요가 없다. 대신 검사와 변호인이 진술조서와 신문조서를 줄줄이 읊어가며 혐의를 다툰다. ‘40년 집사 김백준과 MB의 법정 대면’ 처럼 소위 그림이 될 만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대체로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오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각 언론사는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발표 이전까지 치열하게 취재 경쟁을 벌인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단독’ 기사가 쏟아지고 그만큼 오보도 잦다. 이후 피고인이 법정에 서게 되면 취재 열기는 빠르게 식는다. 재판에는 정보가 넘쳐나지만 검찰 수사 때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다.

MB 법정중계는 고민스러운 기획이었다. 시사IN은 2013년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부터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까지 굵직한 재판을 ‘법정중계’ 형식으로 보도했다. 주간지라는 한계로 인해 재판 내용을 빠르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충실한 기록자로 남기 위한 시도였다. 법정중계 형식은 주요 내용이 있을 때만 보도하는 일반적인 재판 기사와 달리 모든 공판을 빠짐없이 기사화해야 한다.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었다. 앞선 국정농단 법정 중계는 1년5개월이 걸렸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5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이명박 전 대통령이 5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일을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각하’, 이명박 아닌가. 최근 다스에서는 수상한 변화가 포착됐다. MB 최측근으로 통하는 강경호 사장이 사실상 경질되고 이상은 회장이 데려온 사람들이 신임 임원으로 선임됐다. 이를 두고 동생이 수감된 틈을 타 회사를 장악하려는 이상은 회장의 승부수라는 말이 도는가 하면, 다스는 MB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위장 쇼라는 해석도 나온다. 어느 쪽이건 간에 이명박 피고인이 서울동부구치소 12층 독방에서 그저 손 놓고 앉아 더위와 싸우는 일에만 몰두할 것 같지는 않다.

▲ 김연희 시사IN 기자
▲ 김연희 시사IN 기자
그의 성실함과 꼼꼼함은 법정에서도 확인된다. 검찰이 공개한 김성우 다스 전 사장 진술조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스 설립 당시 창업 자금으로 구입한 타자기, 컴퓨터, 회사 비품 등 소소한 것까지 전부 MB에게 보고해야 했다(6월7일 재판).” “MB가 현대건설 사원이던 시절 태국 건설 현장에서 노무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다른 현장 관리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MB만 금고를 붙잡고 끝까지 지켰다(6월15일 재판).” 이 재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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