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게시판에는 성체에 예수를 욕하는 낙서하고 불 태운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7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역대 최대 인파를 모은 직후다. 이후 나흘(11~14일)간 일간신문은 ‘성체 훼손’ 게시글을 27건 보도했다.

언론학자 슈메이커가 정한 보도가치 기준에 따르면, 일간신문은 ‘성체 훼손’이 일탈성과 사회적 유의미성을 모두 충족했다고 여겼다.

이들 보도 가운데 일부 여성의 이른바 ‘남성 혐오’와 극단적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해석하는 기고와 사설이 줄을 이었다. “워마드, 이번엔 천주교 성체 모독… 임계점 넘는 혐오”(국민일보), “‘워마드’에 천주교 성체 훼손 사진… 도 넘은 남성혐오”(동아일보), “‘여성억압 가톨릭 아웃’… 남혐사이트, 이번엔 ‘성체’ 훼손” (매일경제), “‘남혐 사이트’에 가톨릭성체 소각 사진” (문화일보), “금기 넘은 혐오 사회”(서울신문), “‘성체’까지 훼손… 극단 치닫는 ‘워마드’”(세계일보), “‘예수 불태웠다’ 남혐 사이트 회원 성체 훼손 논란”(조선일보), “‘예수 몸 불태웠다’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 ‘성체’ 훼손 논란”(한국일보) 등이다. 하나같이 ‘남성혐오’의 ‘극단’, ‘도 넘음’을 강조했다.

워마드 게시글이 4일 간 연이어 보도할 만큼 무게를 지녔을까? 해당 게시글이 종교 모욕인 건 자명하다. 천주교를 대표하는 주교회의는 공식 성명을 내고 성체 훼손은 “모든 천주교 신자에 대한 모독”이라며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은 이 게시글의 보도가치를 어디에서 찾았을까? ‘부도덕함’과 별개로, 해당 글이 정말로 긴급하고 예외적이며, ‘도’를 넘었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 보도가치를 지녔을까?

수많은 누리꾼의 지적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종교를 향한 모욕과 극단적 표현은 온라인에서 워마드 안팎에 무수하다. 극단적 예로 많은 누리꾼은 오래 전부터 천주교에서 신성시하는 성모 마리아상과 예수 십자가상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 웹페이지를 여러 개 가져오기도 했다. ‘극단주의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워마드의 해당 게시글은 일베의 미러링이라고 여길 수 있다.

▲ ‘Women March For Justice’ 팀 등 익명의 여성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지난 5월19일 오전 3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 ‘Women March For Justice’ 팀 등 익명의 여성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지난 5월19일 오전 3시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이 기사화한 대상과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언론은 무수한 문제적 표현 가운데 워마드의 게시글을 기사화하고 ‘도 넘은 남성혐오’라고 해석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최대 규모로 열려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낳은 직후였다. 언론은 ‘성체 훼손’ 보도를 쏟아내 ‘언론이 개인 혹은 집단의 행동을 판단할 때, 유독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는 의혹을 입증했다. 워마드의 극단성과 ‘남성혐오’에만 현미경을 대는 보도는 언론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공론장을 답습하고, 강화한다는 반증이다.

‘워마드나 일베나 피장파장’ 혹은 ‘일베가 더 나쁘다’는 구도가 문제인 게 아니다. 문제는 과격한 표현 하나 하나에 주목하다 보면 언론이 힘을 실어 보도할 본질이 흐려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언론은 4일 간 ‘극단적 행위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워마드에 충고하는 데만 집중했다. 신문은 지면에 워마드의 극단적 행위를 기사화하는 한편, 임신중단 합법화, 불법촬영 등 성평등 의제는 다루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극단적인 혐오 표출은 성평등 사회를 열어가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신문도 “워마드의 도 넘은 혐오, 어떤 차별도 해결 못한다”는 사설을 냈다. 세계일보는 “극렬주의자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일탈과 언론의 사회적 책임 사이 무게를 따지면, 잘못 짚었다. 사회가 성평등 현안에 공감하고 의제화하는 작업은 워마드 유저의 일탈로 덮혀선 안 된다. 특히 언론이 사회적 약자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안보다 워마드 유저 등 개인 일탈에 주목하고 ‘성평등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데 집중한다면, 성평등을 의제화할 책임을 워마드에 미루는 행위다.

또 다른 문제는 ‘도 넘은 남성혐오’라는 표현이다. 12개 종합일간지 가운데 10곳이 지난 9~14일까지 6일 간 ‘남성혐오’ 혹은 ‘남혐’을 언급하며 문제 삼는 보도를 총 37건이나 보도했다.

언론은 워마드의 극단적 표현이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남성을 향했다는 점이 언론 보도의 기준으로 삼았다.

워마드는 ‘생물학적 성별’을 제외하고 약자 혐오를 극대화한다. 워마드는 극단적 여성주의를 표방한다.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장애 여부, 국적, 출신지역, 나이 등에서 비롯한 약자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워마드 커뮤니티 내엔 난민,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약자를 향한 극단적 혐오가 난무한다. 언론은 워마드의 과격한 표현이 그 중에서도 남성, 즉 현직 대통령과 예수 등을 향할 때만 그 위험성에 주목했다. 한국사회의 일반적 약자혐오에는 문제시하지 않았다. 언론의 약자 혐오 비판은 마땅하다. 언론이 약자 혐오를 비판하는 보도를 꾸준히 해왔다면, 워마드보다 한국사회 일반에 주목했을 것이다.

‘혐오’라는 용어를 분별없이 사용하는 보도도 들여다봐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을 '소수자 및 약자집단에 대해 소수자와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정의한다. ‘혐오’는 그 자체로 사회 내 권력의 맥락을 깔고 있다.

10개 종합일간지는 기사와 오피니언에서 ‘종교에 대한 혐오’ 및 ‘남성혐오’라는 단어를 여과 없이 사용했다. 서울신문은 ‘여성 인권’ 외침과 함께 자라는 ‘남성 혐오’라며 양자를 동일시할 위험이 있는 제목을 내놨다. 그 외 6개 일간지가 ‘남혐’을 비판하는 오피니언(사설/칼럼)을 냈다.

홍성수 교수는 지난 12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성체 훼손을 혐오표현이라고 보긴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가톨릭이 탄압받는 소수종교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재기해(자살해)’ 표현도 “혐오표현의 문제는 아니다. 소수자(약자) 차별과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또는 유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문제다. 현행법상 사자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고, 유족들의 고통을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 넘은 혐오”를 부각하는 보도는, 언론이 ‘도’와 ‘선’의 경계를 다시 그을 때임을 알리는 경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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