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은 정직원인데 우린 협력업체 직원이다.’ 에버랜드 사파리월드 버스기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사파리월드 버스를 몬다. 이들은 에버랜드에서 일하고 에버랜드 로고가 그려진 명찰을 단다. 그럼에도 관리자는 교육시간에 ‘협력업체라고 말하지 말고 정직원처럼 보여라’고 교육한다. 이들은 하청업체 ‘CS모터스’ 직원이다.

CS모터스엔 사파리 기사만 있는게 아니다. 수륙양용차로 동물원을 탐사하는 ‘로스트밸리’ 기사, 에버랜드·호암미술관·숙박시설 등을 오가는 셔틀버스 기사, 청소차·긴급차 기사 등 70여 명이 있다. CS모터스 직원 6명은 26일 오전 용인시 삼성물산 리조트 지원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섬지회 CS모터스분회) 설립을 알렸다. 조합원은 6명이다. 노조위원장을 맡은 김연두 분회장(51)은 “아직 소수지만 뭐라도 해서 바꿔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을 만나 노조 설립 배경을 들었다.

▲ CS모터스 노조는 6월26일 오전 용인시 삼성물산 리조트 지원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설립을 알렸다. 사진=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 CS모터스 노조는 6월26일 오전 용인시 삼성물산 리조트 지원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설립을 알렸다. 사진=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주 6일 근무, 70명 쌓인 휴가만 1000일 될 때도”

가장 큰 불만은 노동조건을 관리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거다. 가령 김 분회장은 2014년 연봉이 3700만원 대에서 2800만원으로 천만원 가량 깎였다. 회사는 팀장 보직을 없앤다며 김 분회장을 현장기사로 강등시켜 월급을 깎았으나 실제 직급 체계는 변동이 없었다. 노조는 이런 일방 결정이 지난 4년 간 부지기수로 쌓여왔다고 했다.

이들은 주 6일 일한다. 업무량보다 인력이 적어 강제로 휴일에 근무한다. 가장 바쁠 땐 특근을 요구받아 주 7일 일한다. 이런 식으로 한 주에 하루씩 대체휴가가 쌓인다. 회사는 연차를 비수기에 몰아서 쓰라고 요구한다. 다음 날 비 소식이 있으면 갑자기 대체휴가가 통보되기도 한다. 성수기엔 쉬고 싶어도 강제로 일하고 비수기엔 쉬고 싶지 않아도 쉬어야 한다. 한 차량 기사는 “60명이 일하는데 적체 휴무가 1000일 이상이 있다”는 비판을 남기고 퇴사했다.

하루 근무량도 적지 않다. 보통 12시간 차를 모는데 심할 땐 18시간 근무할 때도 있다. 가령 몇 주 전 에버랜드 내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차 담당은 새벽 6시에 출근해 10시까지 도로 20km를 청소한 후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1시간 일하고 1시간은 대기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2시간 연속 운행할 때가 잦다. 밤 8~9시까지 셔틀버스를 몰다가 퇴근했다.

사파리월드·로스트밸리 기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은 탑승객을 안내하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까지 겸한다. 1시간에 3바퀴를 돌고 1시간을 대기한다. 김 분회장은 “20명을 배치해야 하는데 18명만 배치하니 꼭 한 사람이 한 대를 추가로 몬다”고 말했다. 2시간 연속 일할 때가 매일 1회 이상 발생한다. 김 분회장은 “제3자는 잘 모르겠지만, 사파리 일을 2시간 연속하면 버스기사는 굉장한 피로도를 느낀다”고 말했다.

▲ 에버랜드 단지 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 및 사파리월드 버스. 협력업체 CS모터스 직원들이 근무 준비를 하고 있다.
▲ 에버랜드 단지 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 및 사파리월드 버스. 협력업체 CS모터스 직원들이 근무 준비를 하고 있다.

관리감독은 에버랜드, 일은 하청업체… ‘불법파견’ 가능성도

김 분회장은 원래 삼성그룹 직원이었다. 1996년 ‘중앙개발’(삼성에버랜드 전신) 공채로 입사해 자연농원(에버랜드 전신) 버스를 몰았다. 의류비, 교육비, 숙박시설지원 등 다양한 복리후생 혜택을 받았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김 분회장 부서가 ‘에버모터스’라는 하청업체로 일방 분사됐다. 복리후생은 대부분 사라졌다.

김 분회장은 “분사를 좋아했던 직원이 어디 있겠나. 대부분 반발했지만 무노조 경영의 삼성은 마음대로 강행했다. 회사는 직원에게 복리후생 수준이 유지되고 경영사정이 나아지면 당시 에버랜드로 흡수된다고 알렸지만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20년이 지나면서 중앙개발은 ‘삼성 에버랜드→제일모직→삼성물산’으로 상호를 변경하거나 합병했다. 버스운행은 여전히 용역업체가 한다.

김 분회장은 CS모터스 직원은 삼성물산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사파리월드, 셔틀버스 운행 등은 에버랜드 운영에 필수인데다 원래 에버랜드가 관리했던 일이라서다. 셔틀버스 운행은 에버랜드 총무 및 서비스운영그룹의 감독을 받고, 사파리월드 버스 운행도 동물원 운영 그룹의 관리감독 하에 있다. 에버랜드 직원인 전병무씨(노조 조직부장)는 “불법파견 여부를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사 싫으면 니가 나가라’ 태도, 가장 분노해”

김 분회장은 “당신들 나가도 일할 사람 많다”는 회사 태도에 가장 분노한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관리자의 자의적 결정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불만을 표시하면 회사는 들어주기는 커녕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라”는 요구가 노조에 가입한 배경이라고 했다.

▲ 사진= 에버랜드 유투브 영상 "에버랜드 '사파리월드'" 캡쳐
▲ 사진= 에버랜드 유투브 영상 "에버랜드 '사파리월드'" 캡쳐

노조파괴 우려에 대해 김 분회장은 “전혀 무섭지 않고 떳떳하다”며 “그동안 직원을 아랫것 취급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루는 관리자를 겪어왔다. 노조를 해서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세상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협력업체는 CS모터스를 포함해 10여 개가 있다. 삼성그룹이 80년간 고수한 무노조 경영은 지난 4월, 금속노조 산하에 노조를 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고용하면서 존폐 기로에 서있다. CS모터스는 이후 설립된 최초의 삼성그룹사 협력업체 노조다.

이들은 26일 “우리 권리를 스스로 찾고, 동료들과 힘을 모아 일하기 좋은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야’라는 기대를 걸기보다는 ‘우리의 힘으로 바꿔보자’라는 마음으로 노동권을 위해 싸워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측은 불법파견 가능성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CS모터스 노조 설립은 CS모터스 내의 사안”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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